거대기업 아마존을 무릎 꿇리다
영국 종이책 매출의 약 60%, 전자책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아마존과 영국의 출판사들이 전자책 가격 결정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아마존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 회사는 매출 2위의 출판사 아셰트(Hachette)사이다. 아셰트사는 전자책 가격을 당연히 출판사가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아마존은 자신들이 결정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아마존은 아셰트사 책의 선주문 버튼을 삭제하고, 통상 3∼5일인 배송 기간을 3, 4주로 늘려 아셰트사에 보복을 가했다. 이 싸움은 아셰트사가 출간한 로버트 갤브레이스의 신작, ‘누에’ 때문에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인 조앤 K 롤링은 지난해 4월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탐정 코모란과 조수 로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소설 ‘쿠쿠스 콜링’을 펴냈다. 갤브레이스가 실제는 롤링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 판매량은 1500부에 불과했다. 롤링은 갤브레이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 ‘사고’였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롤링이 책 판매를 위해 ‘쇼’를 한 것이라 의심했다.
롤링은 굴하지 않고 코모란과 로빈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6권을 더 쓰겠다고 발표했다. 그 두 번째 작품인 ‘누에’(사진)는 지난달 영국에서 출간됐다. 평범한 중년 작가가 새 책의 원고를 에이전트에게 넘기고는 그대로 행방불명된다. 원고에는 그의 부인, 애인, 에이전트, 편집자, 동료 작가 그리고 출판사 사장 등 인물들이 은유적으로 묘사돼 있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라 원고는 외부 공개가 금지된다. 코모란은 작가의 부인으로부터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변인들을 조사해 나간다. 조사가 시작되며 코모란은 사실은 이 작가가 주변인과 많은 원한관계를 가지고 있고, 작가 본인도 기괴한 취미와 악랄한 성격을 가진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발견한다. 또한 작가는 본인만 알던 주변인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원고에 묘사해 두었다. 즉, 이 원고에 묘사된 사람들은 모두 작가를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진 셈인데, 이때 잔인하게 살해된 작가의 시신이 발견된다.
‘누에’는 전작인 ‘쿠쿠스 콜링’과 마찬가지로 영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추리소설이다. 미국의 추리소설들이 빠른 속도감과 탄탄한 긴장감으로 무장했다면 애거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영국의 추리소설들은 등장인물과 주변 배경의 묘사에 더욱 힘을 기울여 서사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책에서 롤링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책이란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마련이지.’ 아마존과 아셰트사의 힘겨루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아마존의 조치 때문에 ‘누에’의 배송이 늦어지자 일부 독자들은 아마존에 거세게 항의했고 일부 독자들은 아마존을 버리고 다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마존은 두 손을 들고 ‘누에’의 배송기간을 3∼5일로 재조정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ennifera@usborne.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