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기억하겠습니다]<상>시간이 멈춘 동네 그림-설문으로 본 심리상태
생존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분석한 차의과대 미술치료대학원 김선현 원장(46·사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 치료 전문가이다. 김 원장은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심리치료 활동을 7년 동안 해오고 있으며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 및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대한 미술심리치료 활동도 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A 양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 7명의 급우들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올라 있다. 하지만 이 사진 속 주인공들 중 A 양만 살아남았다. 지난달 25일 세월호 사고 이후 처음으로 등교한 생존 학생들은 거짓말처럼 휑하게 비어버린 교실과 조화가 올려져 있는 급우들의 책상을 바라보며 무거운 납덩이가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 자신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며 학생들은 그동안의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00일이 가까워진다. 유가족 못지않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끼고 있는 생존 학생들의 현재 심리 상태 및 치료 과정 일부를 본보가 들여다봤다.
한 학생이 그린 그림을 보면 도화지 아래는 파란색으로 파도가 그려져 있고 세월호 선미가 물결 위로 약간 드러나 있다. 왼쪽에는 희망과 기적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오른쪽에는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흰 국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림 가장 위쪽에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날짜 4월 16일이 적혀 있다.
미술심리치료 전문가인 김선현 차의과대 미술치료대학원장은 “국화 꽃잎이 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학생 자신의 우울감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노란 리본은 같은 반 학우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사고 날짜를 적은 것은 ‘마음속에 새기고 잊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표현한 것으로 희생자에 대한 애도 및 외상 사건에 대한 충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생은 그림 대신 글로 “사랑한다 ○○○, 끝까지 친구들 신경 쓴 너는 정말 최고였어, 세상이 망해가는 기분이 들어, 거기서 기다려 … 너희 몫까지 살다 갈게. 나만 나와서, 그날 그저 미안해”라고 자책감을 표현했다. 이은경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마음속에서 죽은 친구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어 현재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자신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과도한 행동이나 정서를 보일 경우 폭식, 불면 등의 부적응 행동도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생존 학생 학부모 대책위원회에서 7월 7∼13일 단원고 생존 학생 75명에게 ‘지난 일주일 동안 느낀 감정’을 물어본 결과를 토대로 만든 워드 클라우드. 워드 클라우드에서는 답변 빈도가 높은 단어일수록 더 크게 표시된다. ‘지쳐 있어요’ ‘지루해요’ ‘마음 아파요’ 등 부정적인 답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행복해요’ ‘장난치고 싶어요’ 등 일부 학생의 장난스러운 답변도 있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충격적 사건이 사회적으로 어떻게든 마무리되고 그 사건이 과거의 것이라 생각돼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며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친구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당시의 충격과 무기력감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00년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의 생존자 김은진 씨도 “생존 학생들은 사고를 책망할 원인을 찾다 결국에는 본인에게 돌릴 수 있다”며 생존 학생 치유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생존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진행했던 비영리 교육단체 ‘아름다운 배움’은 ‘대학생 멘토’라는 방법을 통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아름다운 배움은 경기도교육청의 요청으로 4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3차례에 걸쳐 멘토링 교육을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단원고 생존 학생 치유 및 가정, 학교 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5월 5일부터 대학생 멘토로 심리치료 과정에 참가한 B 씨는 처음 본 생존 학생들의 가슴 아픈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사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죄책감이 느껴져요”, “삶이 무기력해요”란 말을 했다. 하지만 멘토링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교사 및 전문 상담사 등에게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지 못하던 학생들이 형, 누나뻘 되는 멘토들과 친해진 뒤로는 움츠렸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B 씨는 “처음에는 말도 걸지 않던 학생들이 한 달 정도 지나자 멘토 선생님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고 부모님 및 친구들의 이야기도 꺼낼 정도로 밝아졌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배움은 세월호 사고로 숨진 학생들의 형제자매에게까지 ‘멘토링’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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