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술관 ‘스펙트럼-스펙트럼’전

이동기 작가의 폭 8.4m, 높이 3.8m 아크릴화 ‘파워 세일’. 백화점 세일광고 인쇄물, 고 길창덕 화백의 만화 ‘신판 보물섬’ 중 한 컷, 영화 ‘아이, 로봇’의 캐릭터, 북한의 사상 선전물 등 이어 붙일 수 없을 듯한 이미지를 어색함 없이 뒤섞어 엮었다. 플라토 제공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스펙트럼-스펙트럼’전은 전시기획 지휘봉을 탐내온 작가들의 한바탕 살풀이다. 큐레이터가 아닌 작가들이 참여 작가와 전시작품 선정 등 기획 전반을 주도했다.
참여 작가는 14팀. 삼성미술관 ‘아트 스펙트럼’ 선정 작가 48팀 중 특히 활발하게 작업해온 7팀이 자유롭게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7팀을 각각 골랐다. 2001년부터 격년제로 실시하고 있는 ‘아트 스펙트럼’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진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전시 작품은 회화, 영상물, 설치, 디자인인쇄물, 퍼포먼스 등 26점이다. 추천한 작가와 추천받은 작가를 나란히 이어놓지 않고 공간 흐름이나 기존 전시물과의 관계를 고려해 자유롭게 배치했다.

말굽과 말꼬리 장비를 쓰고 말처럼 움직이는 스스로를 촬영한 이형구 작가의 ‘Measure’. 플라토 제공
커밍아웃 작가 오인환 씨(50)의 ‘경비원과 나’는 미완성으로 끝난 설치작품이다. 오 씨는 플라토 경비원 한 명에게 퇴근 후 몇 차례의 개인적 만남을 제안해 최종적으로 그와 커플댄스를 추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려 했다. 그러나 함께 식사와 운동을 해나가던 중 경비원이 더이상의 참여를 거부했다. 3차례 만남에 대한 간략한 기록과 전시실에서 홀로 커플댄스를 추는 오 씨의 감시카메라 영상만 남았다. 후배작가 이미혜 씨(45)도 미술관 환경을 이용했다. 지하 기념품점에서 구매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청동 복제품을 녹여 못 수백 개를 만들고 작품 재료로 썼다.
‘눈에 보이는 것과 실체는 다르다’는 주제를 짚어 온 김범 씨(51)는 복잡한 미로를 빽빽하게 그린 ‘친숙한 고통’ 연작 13번째 마지막 작품인 높이 4.9m 폭 3.5m 아크릴화를 내놓았다. 전시를 통해 호감을 갖게 돼 그가 추천한 3인 연합팀 ‘길종상가’는 이태원 부근에서 가구와 잡화를 파는 30대 상인 겸 작가들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