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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우즈가 바로 뒤에서 연습…신기했죠”

입력 | 2014-07-23 06:40:00

프로 데뷔 14년 만에 ‘디 오픈’에서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대회를 경험하고 돌아온 김형태(37·사진 오른쪽)는 “타이거 우즈가 앞에서 연습하고, 애덤 스콧이 뒤에서 레슨 받고 있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며 첫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김형태가 디 오픈 개막을 이틀 앞둔 15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호이레이크의 로열 리버풀 골프장에서 후배 장동규와 함께 연습라운드를 하며 코스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프로골퍼 김형태


■ 프로 14년차 김형태의 생애 첫 메이저 대회 ‘디오픈 출전기’

클럽하우스앞엔 선수용 벤츠 150여대 마련
“Welcome to the Open!”인사에 가슴 뭉클
TV서 보던 우즈·로즈 등 ★과 함께 연습도
컷 탈락했지만 실력 차 보단 경험 부족 실감
생애 첫 디오픈, 서른여덟 내게 새 꿈을 줬다

프로 14년차 김형태(37)가 난생 처음 디 오픈(The Open) 무대를 밟고 돌아왔다. 꿈으로만 여겼던 메이저대회 첫 출전은 그에게도 특별했다. 김형태는 22일 디 오픈의 감동을 스포츠동아 독자들을 위해 털어놓았다. 그는 한마디로 “대박!”이라고 표현했다.

● “웰컴 투 디 오픈” 한마디에 감동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마음이 들떴다. 컨디션도 좋았고, 프로 데뷔 이후 14년 만에 처음 출전하는 메이저대회였기에 쉽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곳이 골프의 발상지인 영국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인 디 오픈이었으니 설레는 것은 당연했다.

12시간의 긴 비행 끝에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3시간 남짓 대기했다가 다시 리버풀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16시간 만에 마침내 디 오픈의 개최지 리버풀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나는 리버풀에 이상 없이 도착했지만, 디 오픈에서 사용할 골프백이 오지 않은 것이다. 공항 이곳저곳을 헤매며 찾았지만, 리버풀공항 직원의 설명은 히드로공항에서 골프백이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했다. 골프백이 없으면 대회에는 어떻게 나가라는 말인가. 영국은 ‘신사의 나라’고, 선진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공항에서부터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공항 직원은 “내일 아침 도착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해 로열 리버풀 골프장이 있는 호이레이크에 도착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갔다.

화요일 아침. 먼저 도착한 장동규(26)에게 문자가 왔다. “형, 어제는 많이 당황했죠. 골프장에 와보세요.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동규의 문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렌트카를 타고 연습라운드를 하기 위해 골프장으로 이동했다. ‘어떤 곳일까’하고 기대가 컸는데, 골프장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도 큰 느낌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골프장 입구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클럽하우스 앞으로 150여대의 벤츠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선수마다 지급되는 차량으로,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감동의 물결이 계속됐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R&A 직원이 반갑게 맞아줬다. “Welcome to The Open!”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아름 물건을 안겨줬다. 포장이 잘 돼 있는 케이스 안에는 대회 기간 사용할 각종 비표와 코스 가이드북, 입장권, 기념배지와 골프장 안내책자로 가득했다. 입구부터 이런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게 되니 약간은 어리둥절했다.

발길을 돌려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라커마다 참가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졌고, ‘Hyung Tae Kim’이라는 내 이름도 있었다. 문을 열자 또 한번 놀랐다. 골프화와 공, 장갑 등의 기념품으로 가득했다. ‘The Open’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14년 동안 프로생활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 말로만 듣던 로열 리버풀의 첫 티샷

오후 1시쯤 골프장에 클럽이 도착했다. 다행이었다. 준비를 하고 30여분 후 연습라운드를 나갔다. TV를 통해 보셨겠지만, 1번홀로 향하는 곳은 여러 번의 구름계단을 지나야 한다. 워낙 갤러리가 많아 선수들을 위한 이동통로를 따로 만들었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1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연습라운드였지만 마음이 떨렸다. 스탠드에는 수백 명의 갤러리가 지켜보며 우리가 입장하자 박수로 맞아줬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티를 꽂았다. 그리고 그 위에 공을 올렸다. 그 순간 마음속에선 ‘드디어 내가 디 오픈 무대에 서는구나’라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 기분은 아마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연습라운드였지만 실전처럼 꼼꼼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다시 18번홀을 지나 그린으로 향하면서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페어웨이를 따라 걸어오는 그린 입구는 마치 거대한 스타디움 같았다. 수만 명이 앉을 수 있는 규모였다. 그 때 캐디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HT(김형태의 약자), 네가 만약 일요일 이 홀에 들어온다면 수만 명의 갤러리가 보내는 박수소리에 뒷머리가 앞으로 설 만큼 짜릿한 감동을 느낄 것이다. 우리 최선을 다해서 일요일에 꼭 다시 18번홀 그린을 밟아보자.” 아쉽게도 캐디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나는 2라운드 동안 4오버파를 쳐 컷 탈락했다.

수요일 아침에는 2번째 연습라운드를 가졌다. 희한한 광경들이 펼쳐졌다. “타이거 우즈가 뒤에서 연습하고, 저스틴 로즈가 앞에서 연습했다. 닉 팔도는 선수들의 스윙을 지켜보고 있고, 부치 하먼은 애덤 스콧, 션 폴리는 헌터 메이헌 옆에서 스윙을 점검해주고 있었다. TV를 통해서 보던 모습이 내 앞에서 펼쳐지니 신기할 뿐이었다.”

김형태가 16일(한국시간) 함께 연습라운드에 나선 장동규(맨 오른쪽), 최경주(오른쪽 2번째),최경주의 캐디(왼쪽 2번째)와 함께 5번홀 티잉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프로골퍼 김형태


● “From Korea Hyung Tae Kim”

수요일까지 2번의 연습라운드를 통해 디 오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오전 10시54분 티오프였다. 1·2라운드를 함께 할 선수는 PGA 투어 출신 브라이언 하만(미국)과 호주에서 온 레인 깁슨이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티오프를 기다리는 동안 장내 아나운서가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디 오픈에 몇 번째 출전입니까.”

“저는 처음입니다.”

“좋은 플레이를 펼치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마도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했다. 잠시 후 나의 순서가 왔다. 티잉 그라운드 옆에 있던 장내 아나운서가 “From Korea, Hyung Tae Kim”이라며 강한 영국식 발음으로 나를 소개했다. 그 순간 몸엔 전율이 흐르는 듯했고, 그의 짧은 목소리는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뇌리에 깊게 박혔다.

5번 우드로 첫 티샷을 날렸다. 2번의 연습라운드를 통해 계산된 공략이었다. 아쉽게도 첫 홀은 보기를 적어냈다. 큰 실수는 없었지만, 2번째 샷이 그린 앞쪽 벙커에 빠지는 바람에 파 세이브를 하지 못했다. 1번홀 그린 앞에 있는 벙커는 어마어마했다. 벙커의 높이가 내 키보다 더 높아 보이는 것만으로도 주눅 들게 했다. 다행히도 첫 홀에서부터 무시무시한 벙커를 경험하다보니 다음 홀부터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1라운드에서 나는 버디 2개를 잡아냈다. 하지만 보기를 5개나 기록해 3오버파로 경기를 마쳤다.

2라운드에선 물러날 곳이 없었다. 예상 컷오프가 2오버파였기에 최소한 1언더파 이상 치지 않으면 더 이상 디 오픈 무대를 밟을 수 없었다. 2라운드 출발이 좋았다. 4번홀까지 파 행진을 이어오다 5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았다. 티샷이 얼마나 멀리 날아갔던지 2번째 샷에 피칭웨지로 홀을 공략했다. 디 오픈에선 상상하지 못할 만큼 공이 멀리 날아가는데,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컷을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 곳이 ‘로열 리버풀’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탓일까. 7번홀과 9번홀에서 보기를 적어내고 말았다. 이후 9개 홀을 모두 파로 끝냈다. 5번 홀에서의 버디가 디 오픈에서 기록한 마지막 버디가 됐다. 결국 4오버파 148타를 친 나는 2라운드를 끝으로 내 생애 첫 디 오픈을 마감해야 했다.

솔직히 컨디션이 좋아 기대를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컷 통과를 예상했다. 또 막상 경기에 나서보니 기술적으로 부족한 게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실제로 다른 선수들과 내 플레이를 비교해보니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쇼트게임은 그들보다 내가 더 잘했다. 단지 낯선 코스와 큰 무대에 대한 경험부족을 극복하지 못했다.

수요일의 일이다. 함께 연습라운드를 하던 최경주(44·SK텔레콤)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선배, 저도 미국 PGA 투어에 도전해 보고 싶은데 선배 생각은 어떠세요.”

“형태야, 네 나이가 올해 몇이지.”

“서른여덟 살이요.”

“늦은 감 없지 않지만 생각의 차이다. 의지와 생각이 중요하다.”

디 오픈을 끝내고 최경주 선배의 조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처음 경험한 디 오픈은 나의 골프인생을 멈추지 않게 만든 전환점이 됐다.

정리|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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