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因 미스터리]
《 경찰이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매실밭에서 발견한 70대 남성 변사체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22일 최종 확인했지만 이를 둘러싼 의문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개인 재산만 2400억 원(추정)에 달하는 유 전 회장은 지갑이나 휴대전화도 없이 내복 위에 겨울용 점퍼만 입은 채 매실밭 구석 풀밭에 반듯하게 누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달 13일 실시한 1차 부검에서는 사망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차 부검을 시작했지만 자살이나 자연사, 타살 여부를 가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과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
[1] 반듯하게 누운 시신… 자연사? 타살?
저체온증땐 몸 웅크려… 부검결과 나와봐야
서울로 옮겨지는 시신 22일 오전 전남 순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구급차량에 실리고 있다. 시신은 이날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분소로 옮겨져 DNA 정밀 감식을 받았다. 채널A 제공
가장 궁금한 것은 사망 원인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이 잠자는 듯 똑바로 누워 하늘을 향한 상태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잠을 잘 때처럼 오른손을 아래로 쭉 뻗고, 왼손은 아랫배 위에 올려진 자세라는 것. 신발은 왼쪽 발밑에 있었다.
반면 신중한 의견도 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면 통상 몸을 웅크리고 있다”며 “5월 말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타살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다. 유 전 회장이 착용하던 안경이 사라지고 지갑과 귀금속 등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도피 과정에서 안경이나 지갑 등을 챙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유 전 회장 시신의 목과 몸통이 분리된 것이 타살 정황이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경찰 관계자는 “발견 당시 목과 몸이 붙어 있었지만 영안실 안치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타살 정황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과수에 유 전 회장 시신의 독극물 분석을 의뢰하는 등 자살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소주 2병과 막걸리 1병에 남은 액체의 독극물 함유 여부도 분석 중이다.
초여름 구더기 증식 활발… 훼손 빠를수도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백골(白骨)’로 발견된 것도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경찰청은 이날 “유 전 회장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신체의 80%가 썩어 뼈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검경은 5월 25일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에서 직선거리로 3km 떨어진 유 전 회장의 별장 ‘숲속의 추억’을 급습했다. 유 전 회장은 마지막 행적이 드러난 이때부터 시신이 발견된 지난달 12일 사이에 도주하다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길어도 19일간 부패한 시신이 뼈만 남았다는 발표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그게 가능한 일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골화가 가능한 충분한 시간”이라고 분석했다.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 소장은 “겨울에는 백골화 속도가 느리지만 6월에 접어들면 곤충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파리가 시신에 산란을 하면 구더기의 증식이 이뤄져 상상 이상으로 짧은 시간에 뼈가 드러날 수 있다”고 전했다.
[3] 조력자들 사라지고 시신 홀로 발견 이유는
별장서 급히 도망치다 혼자 남았을 가능성
구원파 핵심 신도들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추정되던 유 전 회장은 홀로 시신으로 발견됐다. 수사당국 역시 이 부분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검경 추적팀은 유 전 회장을 오랫동안 체포하지 못하는 이유를 “구원파 신도의 도움을 받아 한 곳에 은신한 채 전혀 움직이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해 왔다. 최근 체포된 유 전 회장의 아내 권윤자 씨(71) 역시 세모그룹 계열사 대표의 친인척 집에서 검거됐다.
유 전 회장 혼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별장인 ‘숲속의 추억’까지 덮친 포위망을 피하기 위해 급박하게 도주하다 보니 홀로 남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운전기사로 알려진 측근 양회정 씨(56)와도 헤어진 채 산길을 헤매다 사망했을 수 있다. 유 전 회장 시신에서 양말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당시의 ‘급박함’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경우 구원파 핵심 조력자들도 그동안 유 전 회장의 행방과 생사 여부를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시신의 사망 원인과 관계없이 유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해 앞으로도 적극 검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4] 술 안 마시는데… 시신옆 소주-막걸리 빈병 왜?
알코올 성분 안나와… 식수통으로 사용한듯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유 전 회장 시신 곁에 술병이 남아 있는 것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시신 발견 현장에는 유 전 회장의 책 제목인 ‘꿈 같은 사랑’이라는 글자가 적힌 천 재질의 가방이 발견됐다. 그 안에 2003년 출시된 보해골드 등 소주 빈 병 2개와 순천막걸리 빈 병 1개가 들어 있었다.
그가 평소 당뇨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만약 술을 마셨다면 지병 악화로 갑자기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는 물을 마시기 위한 식수통으로 빈 술병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 부분에 의혹이 많아 국과수가 알코올 반응을 조사했지만 시신에서 알코올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게다가 보해골드 소주는 생산이 중단된 지 10년 된 제품이다. 유 전 회장이 입고 있던 점퍼 안에서는 도주 때 먹을 수 있는 육포 두 조각과 콩 20알이 나왔다.
한편 발견된 가방 안에는 매실 5∼6개, 속옷, 한국제약이 생산한 ASA스쿠알렌 빈 병 1개, 한 치킨 브랜드의 허니머스터드(소스) 빈 케이스 1개 등이 발견됐다. 치킨 소스 역시 구원파 계열사에서 생산한 유기농 식품만 먹는 것으로 알려진 유 전 회장의 평소 행적과 맞지 않아 향후 추가 수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