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행적 재구성]
시신 발견 현장인 매실밭은 국도 22호선 주변 경사가 있는 마을길(소로)을 100여 m 올라간 뒤 주택 뒤편 산길을 따라 50m를 더 가야 한다. 산중턱을 깎은 뒤 평평하게 조성된 밭이어서 마을과 도로에서는 안쪽을 살펴볼 수 없는 구조다. 잡초도 우거져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주변에서도 시신을 쉽게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매실밭은 나무를 심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잡초만 무성했다. 황토로 채워진 밭은 짙은 황색빛이 선명했다. 유 전 회장이 은신처 숲속의 추억에서 도주한 5월 25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순천 일대 낮 최고기온은 31도까지 올랐지만 아침 최저기온은 13도로 선선했다.
유 전 회장은 차량과 주민 이동이 잦아 눈에 잘 띄는 국도 주변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주민 김모 씨(51)는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야산 산길은 송치재터널 정상과 연결돼 있다.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지만 현재까지 산길의 흔적은 있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경찰서는 유 전 회장이 5월 25일 송치재터널 인근 숲속의 추억을 검찰이 급습하자 도주하면서 주로 산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숲속의 추억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 소유의 길이 1km가량의 폐 터널 입구가 있다. 폐 터널 반대편 출구는 8, 9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가운데에 있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유 전 회장은 출구가 마을 중앙에 있는 폐 터널을 도주로로 이용하지 않고 산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 전 회장은 송치재터널 옆 산길을 이용해 야망연수원이 있는 송치재 정상에 도착한 뒤 이어진 높은 산길을 타고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73세 고령에 다리가 불편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험한 도주로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도 17호선 주변 전남 구례→순천시내 방향 낮은 산의 길은 편하지만 눈에 잘 띄는 단점이 있다. 경찰이 송치재터널 주변 산을 제대로 수색했다면 유 전 회장을 생전에 검거했을지 모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는 평소 구원파 신도들의 호위나 시중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숲속의 추억 탈출 이후에는 홀로 산속에서 도피하면서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주머니에는 현금이 한 푼도 없었고 얼굴이 알려져 최소한의 식량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처지였다. 시신 발견 현장에서 발견된 육포와 검은콩 등은 은신했던 별장에서 탈출하면서 챙겨간 것이지 도피 중 구입한 것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