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의 미학’ 중시한거죠
넉넉한 자연스러움, 꾸밈없는 담백함…. 여름방학은 온 가족이 함께 박물관 미술관에서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의 매력에 빠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였던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유행했던 큼지막한 백자 말입니다. 둥글고 커다란 모습이 달덩어리 같다고 해서 달항아리라는 멋진 이름이 붙었지요. 달항아리는 백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한자로는 백자대호(白磁大壺)라고 부르지요.
○ 조선 백자의 미학
백자 표면에는 매난국죽(梅蘭菊竹·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四君子)와 소나무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사군차저럼 고결하게 살고 싶어 하는 선비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조선 백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 용기였던 백자가 깨끗하고 높은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 달항아리의 넉넉함
달항아리는 넉넉하고 여유롭습니다. 그런데 좀더 눈여겨보면 몸통 한가운데 가장 불룩한 부분이 어긋나 있습니다. 그 부분이 약간 비뚤어져 있어 어깨 부위의 좌우 높이가 차이가 납니다. 달덩어리처럼 완벽하게 동그란 모습이 아니라 약간 불균형하고 뒤뚱스러운 모습이지요.
왜 그럴까요. 높이가 40∼50cm에 달하는 커다란 달항아리를 만들려면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 서로 이어 붙여야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접합 부위가 서로 약간 뒤틀린 것이지요. 그런데 조선시대 도공들은 이를 칼로 깎아내거나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습니다. 그냥 두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아주 완벽하게 둥그렇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약간 부족해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추구했던 것이죠.
○ 달항아리를 사랑한 예술가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선생은 달항아리를 두고 “넉넉한 맏며느리 같다”고 했습니다. 백자 달항아리의 넉넉함은 근대 이후 많은 문인예술가를 매료시켰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김환기 화백입니다. 그는 달항아리에 심취해 ‘항아리’ ‘새와 항아리’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등 달항아리를 그린 걸작을 많이 남겼습니다. 김환기는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싸늘한 사기지만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내가 아름다움에 눈뜬 것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 “목화처럼 다사로운 백자, 두부살같이 보드라운 백자, 쑥떡 같은 구수한 백자”라면서 백자 달항아리를 사랑했지요.
김환기뿐만 아니라 화가 도상봉 강익중, 사진작가 구본창이 달항아리에 빠져 달항아리를 화폭에 옮기고 카메라 앵글에 담았습니다.
○ 외국인들의 달항아리 사랑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도 백자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나라(奈良)시 도다이(東大)사의 작은 사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이 사원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이 달항아리를 훔쳐 달아나다 사람들에게 잡히자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달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파편만 해도 300조각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원의 주지는 수년간의 논의를 거쳐 전문가에게 수리를 의뢰했고 그 덕분에 원래 모습을 되찾아 현재 이 도자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 달항아리와의 만남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가면 멋진 백자 달항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때마침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백자 관련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7점(보물 3점 포함)을 비롯해 조선 백자 50점, 김환기 오수환 화백의 달항아리 관련 그림 3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서울미술관에서도 ‘백자예찬’전이 열리고 있네요. 미술 속에 나타난 백자와 달항아리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백자의 깨끗한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