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알뜰폰. 알뜰폰은 기존 이동통신 3사의 통신망을 싸게 빌려 이통 3사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제공하는 이동통신 서비스 다. 기기 자체가 싼 저가폰과는 다르다. 동아일보DB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원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동통신 요금 수준은 중위권 이하로 저렴하다. 일본의 한 조사에서는 구매력 기준으로 스마트폰 이용요금은 한국이 가장 낮았다. 이처럼 통신요금은 다른 선진 국가에 비해 중하위권이라는 것이 일관된 분석이다. 그런데도 통신비가 높은 것은 단말기가 비싸고 교체도 잦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스마트폰 가격은 평균 643달러(약 66만 원)이다. OECD 평균 366달러(약 37만 원)의 1.75배에 이른다. 호주의 235달러와 비교하면 약 2.7배에 이르고, 아이폰 비중이 높은 미국의 523달러에 비해서도 23% 높아 OECD 회원국 중 가장 비싸다.
한국은 이러한 가격 인하와 유통 혁명의 철저한 예외 지역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저가 폰을 살 기회가 없다. 외국 업체 철수 이후 한국에 출시되는 단말기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만 봐도 ‘국내 단말기 과점 현상’과 ‘소비자 선택권의 제약’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만약 3위 업체 팬택마저 생존을 못한다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고가 폰을 팔아야 돈이 더 많이 남는 상황에서 국내의 두 제조사는 저가 폰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 통신사들도 고가 폰을 팔아야 통신료 수입이 늘어나게 될 테니 저가 폰을 기피하게 된다.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해외 저가 폰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한국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된다. 아이폰이 들어와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변신을 시작했듯이, 해외 저가 폰이 들어오면 한국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은 낮아지고 제조사들도 또 한 번의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적합인증’이라는 제도가 해외 저가 폰 수입에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휴대전화를 제조 또는 판매하려면 전파법에 따라 적합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여러 서류와 함께 부품배치도(또는 사진), 회로도 등을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들이 기밀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부품배치도에는 부품의 번호, 사양 등을 적어야 하는데 판매량이 그리 많지 않을 한국을 위해 그것을 내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품배치도를 구하지 못해 수입업체가 아예 적합인증을 신청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저가 폰이 들어오질 못하고, 단말기를 별도 구매해서 원하는 통신사에서 자유롭게 개통할 수 있는 ‘이동전화단말기 자급제도’도 유명무실하다.
아쉽게도 정부가 최근 발표한 통신비 경감대책은 문제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것들이다. 유심(USIM·가입자인증식별모듈) 가격 10% 인하, 가입비 없애기 등은 휴대전화 가격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금액이다. 알뜰폰 또한 단말기 가격과는 별 상관이 없고, 10월에 시행되는 ‘단말기 유통법’은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휴대전화 가격을 실질적으로 높여 놓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통신요금이 낮아질 거라는 미래부의 설명은 믿기 어렵다. 등이 가려운데 다리를 긁는 격이다. 2009년 아이폰 수입을 허용해서 한국 소비자들도 좋았고, 한국 기업들도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저가 폰이다. 또 한 번의 결단으로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도 낮추고 산업의 도약도 이루자.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