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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음식강산]둥둥! 위 덩더둥셩! ‘냉면 4대 천왕’

입력 | 2014-07-23 03:00:00


배롱나무 붉은 꽃숭어리가 뜨겁다. 발갛게 달아오른 숯덩이다. 각혈하듯 토해놓은 열꽃덩어리다. 유지매미가 “지글지글 딱 따그르르∼” 기름 볶듯 울어댄다. 세상이 온통 찜통이다. 질질 비지땀이 흐른다.

그렇다. 냉면이다. 사각사각 얼음국수다. 냉면은 아버지의 맛이다. 무심한 듯 속정이 깊다. 밍밍하면서도 은근하다.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장옥관 시인)이다. 국물 맛이 맑고 깨끗하다. 뒷맛이 담백하고 개운하다.

냉면은 메밀국수를 쇠고기국물이나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음식이다. 막국수와는 사촌쯤이나 될까. 평양냉면은 칼바람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새참이나 야식으로 먹었다. ‘쨍한 맛’ ‘거칠고 시원한 맛’ ‘뭔가 죽었던 세포를 우우 일어나게 하는 맛’ ‘시원 텁텁 이상야릇한 맛’에 다들 넋이 나갔다.

요즘 대한민국 평양냉면은 대부분 사태나 양지 등을 삶아 우려낸 고기국물을 쓴다. 평양식 동치미국물은 거의 쓰지 않는다. 변덕스러운 동치미국물에 육수 맛이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이다. 육수에 동치미국물을 섞는 곳은 서울 다동의 남포면옥(02-777-2269) 정도다.

서울 장안엔 ‘평양냉면 4대 천왕’이 있다. 을지로4가의 우래옥(02-2265-0151), 을지로3가의 을지면옥(02-2266-7052), 충무로의 필동면옥(02-2266-2611), 장충동의 평양면옥(02-2267-7784)이다.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은 한 집안 사이다. 4대 천왕은 거의 한동네에 모여 있다. 동대문시장 일대 상인 중에 실향민이 많았던 것과 관계가 있다. 닭무침으로 이름난 남대문시장의 부원면옥(02-753-7728)도 비슷하다.

4대 천왕 냉면의 메밀과 전분 비율은 8 대 2(평양면옥)에서부터 7 대 3(우래옥)까지 약간씩 차이가 있다. 대체로 면발이 구수하고 투박하다. 툭툭 끊어진다. 메밀 냄새가 그윽하고 구수하다.

우래옥은 고기국물이 진하고 깊다. 100% 메밀면을 사용한 순면(純麵)이 일품이다. 백김치와 무채의 하얀 고명이 특이하다. 우래옥 주방장 출신이 운영하는 방이동 봉피양(‘평양본가’란 뜻의 평양사투리·02-415-5527)의 순면은 품격이 있다.

평양면옥은 통메밀을 직접 제분한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면을 뽑는다. 필동면옥은 냉면에 고춧가루를 듬뿍 쳐서 나온다. 을지면옥은 돼지고기 편육이 기가 막히다. 4대 천왕 어디나 메밀 삶은 면수(麵水)가 좋다. 조선간장과 고춧가루를 조금 쳐서 쭉 들이켜면, 술꾼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남포면옥이나 마포구 염리동의 을밀대(02-717-1922)도 이름난 집이다. 남포면옥은 쫄깃한 수육이 빼어나다. 을밀대는 젊은 직장인과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노릇노릇 녹두빈대떡이 맛있다. 황해도식 양평 옥천냉면(031-772-9693)도 빼놓을 수 없다. 면발이 꼬들꼬들 보통의 2배쯤 굵다. 돼지고기 완자도 안 먹고 나오면 서운하다.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전분을 쓴다. 북한에선 ‘감자농마(녹말)국수’라고 한다. 면발이 쫄깃하고 질겨 잘 끊어지지 않는다. 훌훌 먹다 보면 국숫발의 3분의 1은 냉면 그릇에, 3분의 1은 입속에, 3분의 1은 배 속에 있다.

매운 양념(다대기)과 회(꾸미)를 얹어 비벼먹는다. 참기름 설탕 식초 겨자도 살짝 곁들인다. 회는 오도독오도독 씹혀야 제 맛이다. 회는 거의 가오리나 간재미를 쓴다. 속초에선 명태나 가자미를 꾸미로 올리기도 한다. 온몸에 진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올 정도로 혀가 얼얼해야 한다.

함흥냉면도 서울 4대 천왕이 있다. 서울 오장동의 흥남집(02-2266-0735), 신창면옥(02-2273-4889), 함흥냉면(02-2267-9500)과 명동함흥면옥(02-776-8430)이 그렇다. 종로4가의 곰보냉면(02-2267-6922)을 넣기도 한다.

평양냉면은 역시 육수 맛이다. 겨자와 식초는 국물 맛을 본 뒤에 쳐도 늦지 않다. 육수 맛을 본 뒤엔 면발의 질감을 느껴봐야 한다. 처음엔 혀와 입으로, 그 다음엔 가슴으로, 마지막엔 온몸으로 떨어봐야 한다. 면발은 배 속으로 사라져도, 그 질감은 혀끝 맛봉오리에 깊이 새겨진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는가.

일본인들은 메밀국수 면발을 목구멍에 넘어갈 때까지 끊지 않는다. 꺼끌꺼끌한 식감에 자지러진다. 오호, 국숫발에 가위질이라니. 그들의 눈엔 거의 엽기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냉면이 나오기 전에 수육이나 녹두빈대떡 등을 안주 삼아 반주를 한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약간 달아오른 몸에 찬 냉면 국물을 쭈욱 들이붓는다. 앗, 차가워라! 화들짝 몸뚱이가 진저리를 친다. 지국총지국총 어찔어찔 감미롭다. 그렇다. 둥둥! 위 덩더둥셩 다롱디리!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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