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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네 볼따구니도 좋다’ 이상의 러브레터

입력 | 2014-07-24 03:00:00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은 1933년 결핵 치료를 위해 황해도 배천온천에 갔다가 기생 금홍을 만났다. 살림을 차려 행복을 누린 것도 잠시. 남성 편력을 즐기던 금홍은 어느 날 집을 나갔다. 그 만남은 소설 ‘날개’로 재탄생했다. 말년의 이상은 이화여전 영문과를 중퇴한 신여성 변동림과 사랑에 빠진다. 시인의 죽음으로 결혼 생활은 4개월 만에 끝났다. 김향안으로 개명한 변동림은 화가 김환기와 재혼한 뒤 평생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어제 본보 보도를 통해 공개된 이상의 친필 연서(戀書)의 수신인은 당시 23세의 이혼녀인 소설가 최정희 씨(1912∼1990). ‘나는 진정 네가 좋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1935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3장짜리 편지엔 진솔한 구애(求愛)의 표현이 넘친다. 하지만 최 씨는 처자식이 있던 작가 파인 김동환을 만나고 있었다.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란 구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쓸쓸한 고백이었다.

▷문학평론가 정규웅 씨에 따르면 최 씨는 타고난 미모에 특유의 여성다움으로 일찍부터 문단의 모든 남성에게 애인이요, 누님으로 통했다. 최 씨는 파인과의 사이에 두 딸(김지원, 채원)을 두었는데 어머니를 빼닮은 자매는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상의 러브레터는 채원 씨가 고인의 편지를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 편지를 검토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정희’란 인물이 등장한 ‘종생기’에 대해 최 씨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추정했다.

▷이상의 편지를 읽어보면 이모티콘까지 동원한 현대의 모바일 애정 고백은 손 편지의 울림을 따르지 못한다.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은 연서에 관한 한 아무나 흉내 내기 힘든 기록을 남겼다. 가정을 가진 청마는 남편과 사별한 여덟 살 연하의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를 만나 플라토닉 사랑을 나눴다. 5000여 통의 편지를 보낸 시인의 20여 년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한국인의 애송시로 영글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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