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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현진]적응 어려운 한국 물가

입력 | 2014-07-24 03:00:00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미국 뉴욕에서의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3년 만에 돌아온 한국의 첫 느낌은 편리함이었다.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고 근처 점포에서 원하는 상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기까지 했다. 미국에서는 우유 하나를 사더라도 자동차를 몰고 마트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한국 소비생활의 익숙함은 여러 매장에서 접한 깜짝 놀랄 만한 가격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최근 커피 전문매장인 스타벅스에 들렀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가장 작은 크기의 아이스커피가 4100원이었다. 미국의 1.95달러(약 1995원)의 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재료가 별반 다를 게 없는 같은 회사의 음료다. 한국에서 배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는 불쾌함에 선뜻 지갑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 평균 2.1% 가격을 올린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인상 근거로 원가 상승을 들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를 설득력이 없는 얘기라고 반박하고 있다. 아라비카 생두(1kg) 가격이 직전 가격 인상 때인 2012년에 비해 크게 내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꼼수’라고 비판했다. 스타벅스 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한국과 미국의 가격 차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싼 커피 가격은 다른 매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2년 스타벅스가 가격을 올린 뒤 다른 커피 브랜드가 차례로 가격을 인상했던 전례에 비춰 볼 때 전반적인 커피 값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커피뿐만 아니다. 3년 전에 즐겨 찾았던 식당의 설렁탕은 5000원에서 8000원으로, 사우나 입장료는 6000원에서 9000원으로 뛰었다. 서울의 체감 물가는 세계에서 물가가 높은 도시로 정평이 나 있는 뉴욕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3년의 공백 탓에 한국에서의 생활물가 상승의 충격은 컸으며 적응도 쉽지 않았다.

올해 추석은 9월 8일로 38년 만에 가장 이른 시기에 찾아온다. ‘여름 추석’은 물가 상승세에 불을 지필 것 같다. 사과와 배 등 제수용품이 9월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수확되는 만큼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를까 우려된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한우 가격은 22일 기준 전년 대비 각각 15.6%와 7.2% 올라 이미 밥상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9월 12일이 추석이었던 2003년에 농축수산물 물가는 9월 5.0%, 10월에 13.2%나 급등했다.

폭염만큼이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하지만 물가당국과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에 둔감해 보인다. 공식 통계로 드러나는 물가지수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5,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1.7%)은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5∼3.5%)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공식 통계로 드러나는 물가지수만 믿고 피부로 느끼는 높은 생활물가를 외면하기에는 곤란한 시점으로 접어들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가 1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6월 생산자물가지수도 21개월 만에 상승세로 방향을 틀었다. ‘소비자물가지수와 체감물가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변명보다 추석을 앞두고 꿈틀거리는 물가 관리에 더욱 신경을 쏟아야 할 때다.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능력도 곧 시험대에 오른다. 저성장을 타개하기 위해 새 경제팀이 끊임없이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금리 인하는 물가에 분명한 압박 요인이다. 자칫 성장에 불을 지피지 못한 채 금리 인하로 물가 상승만 불러오면 서민경제는 더욱 팍팍해질 수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몇 년간 잠잠했던 ‘물가와의 전쟁’에 대비해야 할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