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9단은 여자최초로 500승을 달성한데 대해 “앞으로도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여자 최초로 500승을 이뤄낸 박 9단을 22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남파출소 옆 건물 4층이었다. "겉모습은 섬약하고 승부욕도 없어 보이는데…"라고 슬쩍 물어봤다.
"제가요,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있었나 봐요. 바둑을 한창 배울 때인데 아버지한테 졌어요. 분해서 울었죠. 그런데 운다고 엄마에게 맞았어요(웃음)." 엄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빠에게 지고 우는 딸이 괘씸했던 모양이다.
박 9단은 500승 소감에 대해 "여자 첫 번째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고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면서도 "요즘 성적을 못내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몸이 아픈데, 핑계 같아서…"라며 성적부진을 분해 하는 듯 보였다. 그에게는 2010년부터 시합 도중 몸에 열이 나고 숨 쉬는 게 괴로운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됐다고 한다. 요즘에는 평상시에도 가끔 그런 증세가 나타난다고. 병원에서도 특별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해 주로 한약으로 몸을 보하고 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상황이라는 것.
"혹시 운동을 하지 않아 그런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 합기도도 배우는 등 운동을 좋아 한다"며 여러 가지 운동을 꼽았다. 스쿼시도 6개월 정도했고, 실내 암벽타기도 배웠다는 것. 최근에는 헬스장에서 7개월 정도 근육 운동을 했다고 한다. 요가를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박 9단에게 바둑을 배운 뒤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다.
"입단할 때 정말 기뻤다(그는 중 2때 입단했다). 입단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때는 입단하면 모든 게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한 관문을 통과한 것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모든 기사들이 그랬을 것이다. 2003년 세계대회인 정관장배에서 우승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박지은은 비교적 늦은 나이(10세)에 바둑을 시작했다. 1급 실력의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어 서울 관악구 신도림동의 바둑교실에 3개월 정도 나갔다. 당시 박지은은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학원 원장이 그의 부모에게 "소질이 있으니 계속 가르쳐보라"고 권했다. 부천에 가서도 바둑학원을 다녔다. 거기에는 바둑을 잘 두던 '오빠'가 있었는데 8점을 깔고 두기 시작해 1년 만에 이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바둑이 정말 재미있었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여자연구생제도가 없이 남녀를 같이 뽑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4,5,6조에서 맴돌며 정체기를 보냈다. 그러다 1조까지 치고 올라갔다.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고 양천바둑도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둑 공부를 한 게 실력 향상의 요인이었다. 도장에는 프로 기사들이 사범으로 있었으며, 박영훈(현 9단), 이다혜(현 4단) 홍민표(현 8단) 등과 같이 배웠다.
박 9단은 "바둑을 두다 보면 막히는 때가 온다. 그래도 바둑을 계속 두고 공부가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바둑은 그런 식으로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풍에 대해 "어렸을 때는 무조건 힘 바둑을 좋아했다. 공격하고 잡으러 가는데서 희열을 느꼈다. 지금은 실리도 좋아하지만 두텁게 두려고 한다. 기풍은 계속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은 9단(왼쪽)이 동료들과 운영하는 홍대연구실에서 김동호 4단과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당신에게 바둑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바둑 두는 게 좋았다. 내게는 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 초에는 몸이 하도 아파 휴직계를 낼 생각까지 했다. 속상했다. 요즘 바둑에 올 인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몸이 받쳐주질 않는다. 애증 관계라고나 할까. 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다."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