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 찾는 사람들 급증…절차 까다롭고 복잡 100% 삭제는 난망
7월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고객의 디지털 흔적 삭제 작업을 하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정보 보관 기술을 발달시켜왔지만 이제는 기억의 보존이 아닌, 망각을 위한 서비스를 찾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흔적 삭제 서비스다. 과거 흔적을 지운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세탁소’, 망자(亡者)의 인터넷 기록을 정리해준다는 뜻에서 ‘디지털 장의사’라고도 부르는 이 서비스가 한국에 등장한 지는 1년 남짓에 불과하다. 외국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인터넷 기록을 정리해주는 서비스가 주를 이루지만, 국내 정서상 이런 종류의 의뢰는 많지 않다고. 굳이 따지자면 디지털 흔적 삭제 서비스의 한국식 명칭은 ‘디지털 장의사’보다 ‘디지털 세탁소’에 더 가깝다.
디지털 흔적을 삭제하는 작업은 과연 어떻게 이뤄질까.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7월 중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업체들을 방문, 취재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기록이나 자신의 인터넷 활동 흔적을 조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주 사용한 아이디(ID), 전화번호, e메일 주소, 페이스북 계정 같은 정보를 업체 측에 제공하면 일차적으로 업체 측은 그동안 내가 활동한 데이터를 수집해 보내준다. 업체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클릭 한 번이면 내 인터넷 흔적의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1차 분석은 흔히 ‘구글링’이라 부르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포털사이트에서 앞서 열거한 정보들을 검색하는 것이다. 구글, 네이버, 다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사이트별로 어떤 내용을 몇 날 몇 시에 올렸는지 순식간에 알 수 있다. 이렇게 확인된 결과를 받아 개인이 직접 삭제하는 경우도 많다. 업체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차 서비스에 드는 비용은 대략 30만 원이다.
더 정밀한 분석을 요구하면 업체는 검색 범위를 개인 홈페이지나 쇼핑몰 등으로 확장한다. 고객은 최종 분석보고서를 받아본 뒤 그중 지우고 싶은 정보를 택한다. 정보가 확산된 범위와 데이터 양, 삭제의 어려움 정도에 따라 견적이 나온다. 초교 시절 즐겼던 게임 기록부터 경품 응모 흔적까지, 각 사이트에 일일이 삭제를 요청해야 하는 전형적인 수작업이다. 각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다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당일 삭제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달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비용 역시 10만 원부터 억 원 단위까지 천차만별이다. 개인은 10만 원부터 동영상 삭제가 어려운 경우 1500만 원까지 들고, 기업은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1억~2억 원에 이르기도 한다.
디지털 흔적 삭제를 의뢰하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개인정보 입력 양식.
이렇듯 디지털 흔적 삭제는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며, 기술적으로 100% 완벽한 삭제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삭제한 내용을 누군가 개인 컴퓨터에 복사해뒀다가 다시 인터넷상에 올리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악성 댓글이나 동영상의 유포를 막으려고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관리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고객의 연관검색어를 분석하고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보내는 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 분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한국의 경우 ‘잊혀질 권리’는 청소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기에 저지른 실수가 남은 인생 70여 년을 따라다닌다면 너무 가혹한 고통이라는 것. 연예인 역시 공식 활동이 아니라면 사생활의 아픈 부분은 잊힐 권리가 있다는 게 김 대표의 견해다. 반면 디지털 흔적 삭제 서비스에는 이러한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부정적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이충우 대표는 말한다. 서비스를 악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 간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기범이 흔적 삭제를 의뢰해온 적이 있다. 데이터를 수집해보니 이미 본인이 사기 행적 몇 개를 지운 상태였다. 자신이 못 찾은 부분이 걱정돼 의뢰한 모양이었다. 또 확인해본 결과 이미 경찰에 신고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해당 의뢰인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잊혀질 권리’란 개인이 자신에 관한 온라인상의 각종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한 논쟁은 최근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주간동아’ 942호 참조)을 계기로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바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원칙이 공인과 일반인을 구분해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 이재진 교수는 “공인의 경우 극히 사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일반인보다 삭제 요건을 까다롭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박영우 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보호팀장은 “대상자가 누구인지, 정보 내용은 무엇인지, 어느 정도 공개돼 있는지 등의 기준을 정하고 그가 입는 피해와 삭제가 불러올 사회적 이익 가치의 훼손을 비교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맹서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