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미래에 제3차대전이 터지면 과학기술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까. 옥스퍼드대에서 산업사를 가르치는 크리스토퍼 매케나 교수와 최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 따르면 3차대전은 벌어져선 안 되지만 벌어질 필요도 없다. 이미 대기업이 기술 투자에 있어 전쟁국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전쟁이 터지면 국가는 평시와 달리 대규모 자금을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한다. 최고 두뇌들도 불러 모은다. 하지만 군대 안에서 개발된 수많은 기술은 대체로 과잉투자·과소활용 상태에 머문다. 전쟁이 끝난 후 이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민간영역으로 흘러들어가 제트여객기, 핵발전소, GPS 등 유용한 제품과 서비스로 태어난다.
여러 기업이 참여하면 이런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만 한국 기업은 이를 꺼린다. 특히 한국 대기업들은 외부는 고사하고 직접 개발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에게도 기술의 소유권을 나눠주지 않으려 한다. 이직하는 엔지니어들을 기술 유출범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수천억 원의 기술유출 혐의로 고발된 연구원이 정작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이나 몇백만 원의 벌금형만 받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기술과 연구 인력은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곳으로 활발하게 이전되고 공유되는 게 바람직하다. 만일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국 군대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붙잡아놓고 기술이전을 막았다면 미국은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매케나 교수는 대기업 안에 묶여 있는 지식이 보다 자유롭게 외부와 소통하고 흘러들어가야 한국 경제의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특허기술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부에서 개발한 기술이 최대한의 효용을 낼 수 있는 곳으로 보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국가 경제를 위해선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만큼이나 개발된 기술의 응용도 중요하다는 게 세계대전이 주는 교훈이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