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23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진 ‘스위스로망드오케스트라’의 공연 중 객석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자 관객들 사이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주자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태연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빈체로 제공
5월 23일 열린 서울시향의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5번: 더브릴리언트 시리즈2 연주회’. 공연 전 ‘휴대전화 전원을 꺼 달라’는 몇 차례 안내방송이 나갔지만 3악장의 서정적인 연주가 물이 오를 즈음 객석에선 요란한 휴대전화 벨소리가 두 차례나 울렸다. 연주자들뿐 아니라 객석의 다른 관객들마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아시아 오케스트라로는 최초로 DG와 음반 발매 장기 계약을 한 서울시향은 ‘벨소리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공연의 실황을 녹음해 음반으로 발매해야 하는데 난데없는 벨소리가 녹음을 망치고 있는 것.
서울시향뿐만 아니다. 클래식 공연 단체와 기획사들도 휴대전화 벨소리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달아 열린 스위스로망드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공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말러 9번 정기연주회에서도 벨소리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기획해온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최악의 ‘벨소리 테러’를 겪었다. 2011년 3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었다.
“당시 브루크너 8번 중 3악장의 아다지오를 연주 중이었다. 그때 객석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그 벨소리는 장장 38초 동안 이어졌다. 조용히 연주되는 아다지오 부분이라 누가 접근해 말릴 수도 없었다. 답답함을 넘어 미칠 지경이었다.”(빈체로 송재영 부장)
이날 공연에선 그 흔한 앙코르 연주도 없었다. 콘서트가 끝난 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연주를 계속했지만 분명 벨소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는 휴대전화 벨소리 테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공연계에 두고두고 회자됐다.
일본 공연장에서는 전파차단기를 설치해 휴대전화 벨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관객이 공연장에 들어서면 휴대전화는 자동으로 ‘먹통’이 된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전파차단기를 시범 도입해 운영했지만 2003년 당시 정보통신부는 ‘누구든지 전기통신 설비의 기능에 장해를 줘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을 이유로 최종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음악평론가 류태형 씨는 “소리는 클래식 공연의 생명이나 다름없다”며 “정부가 전기통신사업법을 너무 경직되게 해석했다. 공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주요 공연장 안에 전파차단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