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도주로 추적해보면 유병언 타살 음모론 근거 희박 조력자 모두 검거되고 검경에 토끼처럼 쫓기다 탈진해 쓰러져 숨졌을 가능성 살아 있는 유 씨 검거 실패로 가슴 쓸어내리는 비호세력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유 씨의 마지막 도피경로를 취재하기 위해 채널A 촬영팀과 함께 찾아갔을 때 흑염소와 멧돼지 요리를 파는 이 식당을 젊은 청년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내게 구원파 신도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는 “변 씨 부부가 구속돼 염소들이 굶어죽게 생겨 먹이를 주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설교 동영상이나 책을 통해 가르침과 행적을 잘 알고 있다”며 유 씨에 대한 존경의 염(念)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검찰 발표나 언론보도는 쓰레기다. 인정할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유 씨에 대한 세론(世論)을 거짓이라고 치부해 종교적 신념을 정당화하려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의 심리를 드러냈다. 구원파에는 유 씨의 아들 대균 씨와 함께 검거된 미녀 호위무사 박수경 씨처럼 대를 이어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아니라 유 씨 일가에 멸사봉유(滅私奉兪)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 씨가 순천으로 도피한 이후 밀항설이 떠돌면서 해경 해군까지 동원됐지만 그가 밀항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1970년대에 권 목사의 지시를 받고 이곳 순천 일대에서 2년가량 전도를 했다. 송치재 인근에는 구원파 교회와 신도들이 집단 거주하는 산간 마을이 있다.
경찰은 유 씨의 시신 옆에 있는 막걸리병과 소주병을 보고 행려병자로 단정했다. 검찰과 경찰에 쫓겨 별장을 허겁지겁 빠져나온 유 씨는 인근의 폐터널에서 술병을 주워 물병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폐터널에서도 단종된 보해소주병과 소주 상자가 발견됐다. 폐터널 옆으로는 그대로 마실 수 있는 맑은 계곡물이 흘렀다.
유 씨의 시신을 40일 동안 안치했던 순천장례식장 대표는 검시할 때 “유 씨의 아래턱뼈가 내려앉아 금이빨이 보였다”며 무심코 경찰에 “옛날에는 잘살았는가 보죠”라고 말했다. 경찰도 금이빨 10개를 검안서에 기록했다. 경찰은 청해진해운 계열사에서 만드는 스쿠알렌 병이 발견됐는데도 그냥 넘겼다. 지문 채취도 당초 왼손 손가락 다섯 개만 하고 오른손 손가락 다섯 개는 하지 않았다. 경찰이 “오른손은 좀 건조된 뒤에 하자”고 하곤 계속 미뤄두다가 유전자(DNA)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오른손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언제나 음모론은 그럴듯하고 팩트는 단조로운 경우가 많다. 유 씨의 시신을 현장에서 수습했고 행려병자 시신을 다룬 경험이 많은 장례식장 대표는 “유 씨의 시신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비서는 체포되고 운전사는 달아났다. 70대 고령에 지병이 있던 유 씨는 조력자들과 연결이 끊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서 검문검색을 피해 산길로 이동하다가 탈진해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
별장 벽 속에는 10억 원가량의 돈이 있었지만 그의 수중에는 한 푼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유기농 콩알이 몇십 개 나왔다. 그는 검경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토끼몰이를 당한 짐승처럼 쫓기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오대양 때부터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 속으로 몰아넣으며 왕국을 건설하고 후계구도까지 갖추어 놓았지만 일족은 풍비박산이 나고 잡풀 더미 속에서 행려병자처럼 죽어간 것이다. 사악한 인간의 야망과 탐욕은 콩알 한 줌으로 남았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복침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