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美-EU 고강도 제재, 크렘린 내분… 푸틴 내우외환

입력 | 2014-07-31 03:00:00

[‘우크라 사태’ 충돌 격화… 서방과 新냉전 조짐]




러시아 제국의 옛 영광을 재현하는 ‘차르’를 꿈꾸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빠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989년 냉전체제 종식 이후 최고 수준의 대(對)러시아 제재안에 합의해 푸틴 대통령을 옥죄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제재 강화는 신(新)냉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나 푸틴 대통령을 고립시키기 위한 서방의 제재는 더욱 날카로워지는 추세다.

EU 28개 회원국 대표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금융 방위 에너지 등 러시아 경제 주요 부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제재안에 합의했다. 러시아 정부가 지분을 50% 이상 소유한 은행들이 유럽 금융시장에서 90일 이상짜리 채권을 판매하거나 주식을 거래하지 못하고 하고 신규 무기 거래도 금지하며 북극해 개발과 셰일오일 채굴 기술협력도 제한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EU의 3대 무역 파트너로 지난해 EU와 러시아 간 무역 규모는 3300억 달러(약 338조 원)였다.

미 재무부도 이날 러시아 정부가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외무역은행(VTB)과 자회사인 모스크바은행, 러시아농업은행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로써 러시아 6대 국영은행 중 미국 제재를 받는 은행은 5개로 늘어났다. 러시아 은행들은 앞으로 미국과 유럽의 금융시장에서 돈을 조달할 수 없게 돼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EU옵서버’는 이번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올해 약 31조 원, 내년 약 103조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1.5%, 4.8%에 해당하는 규모다.

러시아 내 여론도 차갑게 식고 있다.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푸틴의 친구들’로 불리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입을 타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미하일 카샤노프 전 러시아 총리는 “전면적 제재가 시작되면 러시아 경제는 6주 안에 붕괴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독일연방정보국(BND)의 게르하르트 신들러 국장은 “크렘린 내 강경파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사이에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독일 시시주간 슈피겔이 전했다. 신흥재벌 세력은 서방과의 타협을, 강경파들은 러시아가 유럽 대신 중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도 푸틴 대통령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8일 러시아 정부가 강제 수용한 옛 러시아 석유회사 ‘유코스’ 주주들에게 500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러시아 GDP의 2.5%에 이르는 금액이다. 영국에선 말레이시아항공 MH17 격추로 희생된 영국인 유족들이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수백만 파운드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냉전 종식 이후 25년간 이어져 온 서방과 러시아의 협력관계의 장(chapter)이 닫히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은 내셔널리즘을 내세워 내부 단속에 나서는 한편 서방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강 대 강’ 맞불작전을 구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최창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