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불쾌한 것은 물론이고 혈기왕성한 나이라면 주먹질이 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은 인격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이 무서운 단어인 ‘불신(不信)’이 한국 사회에서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미친 영향이 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세월호 안에서 기다리다가 30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대참사의 트라우마가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사고를 미리 막지 못했고,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면서도 승객을 구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해경은 책임을 피하려고 “‘탈출하라’고 방송했다”는 허위 문서까지 만들었다. 탐욕 때문에 안전을 소홀히 한 기업, 정확하지 않은 뉴스를 전한 언론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이럴 때 아파하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회 통합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정부가 잘못한 점은 날카롭게 따져 책임을 묻고 대안을 제시해 국민들이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정치가 불신을 더욱 조장하는 형국이다. 신뢰를 얻으려면 적어도 공개적으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여야 원내 지도부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7월 16일까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겠다’고 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했다. 협상 과정에서 여야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여아의 대치가 길어지고 있어 8월까지 정부조직법과 ‘김영란법’ ‘유병언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아일보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정치인을 꼽은 국민은 0.8%에 불과했다. 단연 꼴찌다. 정치인을 포함해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정치인을 가장 신뢰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신뢰 회복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재·보궐선거를 통해 새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15명의 국회의원들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유세 기간에 유권자들에게 제시한 공약부터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게 순서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