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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까칠한 남자, 까탈스러운 여자

입력 | 2014-07-31 03:00:00


손진호 어문기자

‘까칠남’과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 유행어 ‘까도남’을 낳았다. 까도남은 ‘까칠한 도시 남자’를 줄인 말이다. 셋 모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남자들이다.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TV 속에서 이들은 여심(女心)을 마구 흔든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툴툴거리는데도 여성들은 ‘멋있다’며 빠져든다.

문화적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유행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2, 제3의 의미가 덧칠해진다. ‘차도남’류의 단어에 ‘매력적’이라는 뜻이 들어간 것은 ‘착하지만 평범한 사람’에 대한 심리적 반항인지도 모른다. 사전이 입말을 쫓아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아직은 세 남자 모두 표제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이상한 건 또 있다. 셋 중 처음 등장한 ‘까칠남’은 마음이 까칠까칠하고 메마른 남자를 뜻한다. 그런데 사전 속의 ‘까칠하다’엔 그런 뜻이 전혀 없다. ‘야위거나 메말라 살갗이나 털이 윤기가 없고 조금 거칠다’라고만 돼 있다. 사람의 성격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성격이 까칠하다’는 의미의 표제어는 무얼까. ‘가슬가슬하다’와 ‘가스러지다’가 있다. 가슬가슬하다는 ‘살결이나 물건의 거죽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뜻과 함께 ‘성질이 보드랍지 못하고 매우 까다롭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가스러지다는 털과 관련이 있는데, 가슬가슬하다처럼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두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까칠하다는 더이상 살갗에 한정된 표현이 아니다. 마음이 메말라 있다는 비유적 의미로 쓸 수 있다고 본다. ‘성격이 모나거나 까다롭다’거나 ‘나긋나긋하지 않고 예민하다’는 식으로 풀이를 하면 될 것이다.

‘까탈스럽다’도 많이 쓰지만 표제어가 아니다. ‘까다롭다’의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까탈스럽다는 이리저리 트집을 잡아 까다롭게 구는 일을 뜻하는 ‘가탈’의 센말 ‘까탈’에 형용사를 만드는 ‘-스럽다’가 붙은 것이다. 문제가 없는 단어다. 그런데도 까다롭다의 잘못이라니, 영 납득이 가질 않는다.

사전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문란을 막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전이 만능은 아니다. 언어만큼 사회 변화에 민감한 것도 드물다. 언중의 씀씀이를 헤아려 의미를 확장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너무 까칠하고 까탈스럽게 굴지 말고.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