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나는 손학규에 대해 4번의 칼럼을 썼다. 그가 경기도지사 직을 마치고 민심대장정에 올랐을 때 “쇼라고 아무나 하나”라고 격려했다. 한나라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적했을 땐 “13년간 키워준 당에 침을 뱉고 떠나는 건 도리가 아니다”는 투로 비판했다. 처음 민주당 대표가 됐을 땐 “쟁쟁한 야권 거물들 틈바구니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다. 두 번째 민주당 대표가 됐을 땐 안철수와 비교하며 “경기도지사 시절의 신선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로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가 그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야당 대표와 두 번의 대권 도전 관록을 가진 사람이 경기 수원병(팔달) 보궐선거에서 정치 신인에게 패했으니 체면을 구긴 정도를 넘어 충격이 클 것이다. 3년 전 경기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의 승리로 과시했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멋지게 입증해 보여 재차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무덤’이 되고 말았다.
▷교수 손학규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탁돼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다. 그는 이 당에서 3선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하며 정치적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대통령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되자 미련 없이 다른 둥지로 날아갔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초지일관해 결국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의 뜻을 이룬 이정현과 그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그가 한나라당에 그대로 남았더라도 지금쯤 정계를 은퇴했을까.
▷새 둥지의 사람들은 아쉬울 땐 그에게 손을 내밀다가도 대권 경쟁이 붙으면 ‘보따리장수’ ‘정체성’ 운운하며 돌팔매질을 했다. ‘13년 과거’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 낙인이었다. 그의 정계 은퇴 소식에 박지원 의원은 “휴식을 끝내고 돌아오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의 나이도 어언 67세로 3년 뒤엔 칠순에 들어선다. 지금은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대권의 꿈에 연연한 복귀는 노추(老醜)로 비치지 않을까.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