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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폭로前까지 장관에도 쉬쉬… 군기 빠진 軍수뇌

입력 | 2014-08-05 03:00:00

[윤일병 구타사망 파문]커지는 軍 축소은폐 의혹
참모총장 “전모 알기까지 시간 걸려”… 사단장 해임으로 징계 마무리 시도
軍, 윤일병 사망 3일뒤 상병 추서… 韓국방 대국민사과후 뒤늦게 공개




고개숙인 참모총장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육군 제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국방위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국방위원들은 군의 축소 의혹을 제기하면서 권 참모총장 문책론을 제기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주말에 접어든 2일 군 수뇌부 긴급회의 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4일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이번 사건의 크나큰 파장을 뒤늦게나마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언론 통해 사건 접한 장관 질타

이날 국회에서 긴급 소집된 국방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는 군의 안이한 대응과 축소·은폐 의혹에 대한 의원들이 강도 높은 질타가 이어졌다.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노철래 의원이 “6월 30일 취임 후 윤모 일병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느냐”고 질문하자 한 장관은 “보고받은 것은 없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건 7월 31일”이라고 답했다.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에야 사건 전말을 비로소 알게 됐다는 뜻이다. 한 장관은 “만약 담당 검찰관이나 지휘관이 지금 느끼는 것처럼 사안의 엄중함을 알았다면 보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의 대응이 안이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사건 발생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사건 다음 날인 4월 8일 군 수사기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추가 보고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과정 때문에 육군 수뇌부가 이번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최초에 사실을 알게 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전모가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며 “가해 병사들이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노력했고, 그 내용대로 최초 보고가 됐다”고 해명했다.

윤 일병은 해당 부대로 전입해 온 당일(2월 18일)에만 본부포대장과 면담을 했다. 이후에는 별다른 보호조치가 없었던 것. 국방위 소속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은 “전입하고 나서 일주일, 10일 초반에 과연 적응했는지를 봐야 하는데 간부들이 부대관리 기법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국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은 “민주화 시기에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며 “차라리 엄마에게 이를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지급하라”고 꼬집기도 했다.

○ 군안팎 “수뇌부, 책임 안지고 자리에만 연연”

국방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의원들은 군 수뇌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은 “군내 가혹행위 사건 중 가장 극악한 군대판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는 평도 나온다”며 “군 수뇌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경각심이 군 내부에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사건 발생 이후에도 윤 일병의 군인수첩을 찢었다는데 군 검찰은 증거인멸에 대해 별도로 기소를 안 했다”며 군 검찰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장관은 이날 28사단장을 보직해임한다고 밝히면서도 육군 수뇌부에 대한 추가 징계 방침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다만 추가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함으로써 여지를 남겨뒀을 뿐이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군 수뇌부가 책임지지 않고 자리에 연연해하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한 장관이 사과를 할 때 윤 일병이 상병으로 추서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한 장관은 윤 일병의 계급을 상병으로 불렀다. 국방부 관계자는 “육군이 4월 10일 윤 일병을 상병 추서하고 5월 8일 순직 처리했다”고 밝혔다. 4월 10일은 윤 일병이 사망한 사흘 뒤이며, 가해자 4명이 구속된 바로 다음 날이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신속한 상병 추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 장관의 사과 발표에 앞서 국회에서 열린 현안보고에서는 ‘28사단 일병 사망사건 관련’이라고 돼 있어 군 당국 간 추서와 순직처리 사실도 공유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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