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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정임수]동양사태 10개월

입력 | 2014-08-05 03:00:00


정임수 경제부 기자

요즘 드라마 촬영장에 밥차나 간식을 보내는 팬들이 많다. 6월 말 막을 내린 MBC 드라마 ‘개과천선’ 촬영장에도 종영을 며칠 앞두고 야식이 배달됐다. 밤샘 촬영을 하는 출연진과 제작진을 위해 야식을 보낸 건 주연배우인 김명민이나 김상중의 팬이 아니었다. 생뚱맞게도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 기업어음(CP)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동양 사태’ 피해자들이었다.

이 드라마는 대형 로펌의 잘나가던 변호사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돈과 권력을 위해 일했던 과거를 바로잡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동양 사태와 판박이로 보이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극중 재벌인 유림그룹은 자금난에 빠지자 부실 계열사의 회사채를 발행해 계열 증권사를 통해 판매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동양 사태 피해자들은 잊혀져가던 사건을 되새겨주고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대변해준 드라마가 고마워 쌈짓돈을 모아 야식을 대접한 것이다.

10여 개월간 진행된 동양 사태 피해자 구제절차가 지난달 31일 일단락됐다.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분쟁조정을 신청한 1만6000여 명에 대한 조정결정을 내렸다. 금감원은 이 중 78%인 1만2000여 명을 ‘불완전판매 피해자’로 인정했으며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한 동양증권에 이들이 본 손해의 15∼50%를 배상하도록 했다. 법원 기업회생절차에 따라 회사채와 CP를 발행한 계열사들이 변제하는 금액을 더하면 투자자들은 원금의 평균 64%를 회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런 금감원의 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주식, 채권 등 증권 투자에는 투자자의 자기 책임이 따르는데 10명 중 무려 8명을 불완전판매 피해자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고수익을 좇아 수십 차례 채권을 사고팔며 이익을 챙겨온 ‘전문 투자자’에게 배상할 경우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게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배상비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가 동양그룹이 조직적으로 벌인 ‘사기 판매’로 비롯된 만큼 배상비율을 10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조정 결과에 반발해 재심의를 요구하고 있다. 투자자 중엔 “원금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증권사 직원의 말을 듣고 힘들게 모은 재산을 날린 선의의 피해자도 많다.

이런 논란을 고려해 분쟁조정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최수현 금감원장이 직접 나섰다. 간부들의 만류에도 브리핑을 자청했다고 한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원장이 책임지고 발표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뒤늦게나마 최 원장이 금융당국 수장(首長)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 반갑다.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부터 금감원 직원이 연루된 KT ENS 대출사기 사건 등 올 들어 발생한 대형 금융사고와 비리와 관련해 최 원장이 전면에 나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총대를 멘’ 금감원장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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