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사건 軍 대응,국민 분노 당연하지만 정치·언론이 호통만 치면 軍紀 士氣 人權 해결될까 포퓰리즘적 접근, 군 상황 악화 우려 병력 줄이고 복무기간 단축 경쟁 사고 강박증에 훈련도 소홀 弱軍 만드는 정치·사회풍토 더 걱정
배인준 주필
윤 일병 구타사망 사건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군(軍)은 북한군이 아니고 바로 우리 군이다. 북한이 도발하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바로 우리 군이다. 이 군이 오합지졸이면 북의 국지(局地)도발에도 우왕좌왕, 안보판 세월호를 낳으리라. 이 군이 지리멸렬하면 북한 유사시나 통일 상황에 천추의 한을 남기리라. 우리 군의 대응 대상은 북한만도 아니다. 미중이 용호상박하고, 일본은 극우 색채를 더해간다. 군사적 충돌을 배제할 수 없는 풍운이 우리 머리 위를 떠돈다.
군이 사건사고를 은폐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면 국민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다. 윤 일병 사건을 놓고 여당 실력자, 여야 정치인, 언론 할 것 없이 군을 통타한다.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가해자와 방조자를 일벌백계하라며 서슬이 푸르다. 그렇게만 하면 복잡한 요인이 얽히고설킨 사고를 근절할 수 있을까. 정치가 사법 영역까지 건드리면서 군을 주눅 들게 하고, 군 지도층이 동네북의 비굴을 감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우리 군은 평시 안전만 지키는 약군(弱軍)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길 강군(强軍)이어야 한다. 그런데 군기(軍紀)를 둘러싼 정치적 포퓰리즘이 오히려 군의 위기, 안보의 위기를 키우지는 않는가.
첨단무기 시대에 소총 명사수가 무슨 소용인가 한다면 딱한 일이다. 저들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보다 더 무모해져서 서울 어딘가 안보·민생의 급소에 잠입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때는 지상군, 특히 정예 소총병이나 저격수들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겨야 할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서울 남성대의 특전사를 헐어 아파트를 짓기로 했고, 이명박 정부가 이를 실행해 특전사는 경기도 이천으로 밀려났다. 그 덕에 20만 병력의 북한 특수부대는 서울 심장부 타격의 골든타임을 최소 1∼2시간 더 벌게 됐다. 작전은 10분이면 ‘상황 끝’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복무기간이 10년인 북한 병사와 이미 21개월로 짧아진 우리 사병의 일대일 전투력은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가 아닐까. 훈련도 부족한 채 단기간에 일병 상병 병장까지 달아주니 계급값을 못하는 미숙련병(未熟練兵)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사관으로 끌어올릴 자원도 연쇄적으로 모자란다.
저출산과 복무기간 단축이 맞물려, 장기적으로 50만 병력이라도 유지하려면 병력자원이 남아돌던 과거처럼 우수자원만 골라 입대시킬 수도 없다. 문제병사, 이른바 관심병사가 끊이지 않는 한 토양이다. 결국 북한군은 프로 11명이 뛰고, 우리 군은 아마추어 8명이 뛰는 축구를 연상케 한다. 무기를 아무리 첨단화해도 군의 핵심전력(戰力)은 강한 병력이다. 수(數)의 중요성은 세계 전사(戰史)가 웅변한다. 이순신의 명량대첩은 예외적이기에 그가 불세출의 영웅인 것이다.
군대 문화는 사회 문화의 연장이다. 군대 밖에서는 온갖 강력·인신범죄가 끊이지 않는데, 군대만은 그런 것이 전무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구조적 요인들을 살피지 않고 그저 무사고만 강요하면 상급자가 하급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군기가 더 해이해져 군기사고의 위험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 각급 지휘관이 사건사고 예방 노력을 배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스무 살 조카가 그제 머리 깎고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씩씩하고 단련된 병사가 되어 야무지게 복무한 뒤, 더 사나이다운 모습으로 가정과 학교로 돌아오길 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