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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만 쓰면… 식물인간 회복 가능성까지 알아내

입력 | 2014-08-08 03:00:00

스마트센서가 바꿀 미래 세상




‘스마트IT융합시스템연구단’ 소속의 KAIST 연구진이 개발 중인 뇌 혈류 측정 장치 ‘너스(NIRS)’. 스마트 센서가 달린 헬멧이 뇌 혈류를 감지한 뒤 태블릿PC로 정보를 보내는 방식이어서 뇌 상태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표고버섯, 표지판, 표준….

6일 대전 KAIST의 한 연구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황건필 씨가 머리에 플라스틱 헬멧을 쓰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 화면에 ‘표’라는 글자가 뜨자 황 씨는 이 글자로 연상되는 단어를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황 씨가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그의 한쪽 손에 들린 태블릿PC에서 붉은빛이 깜빡였다. 태블릿PC에는 3차원으로 정교하게 그린 인간의 뇌가 떠 있고, 황 씨가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뇌의 전두엽이 붉게 물들었다. 일부 대형 병원에만 설치된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장치를 써야 볼 수 있는 뇌 속 혈류를 태블릿PC 하나로 손바닥 안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 헬멧 쓰고 태블릿PC로 뇌 건강 검사

fMRI를 대체한 건 헬멧 속에 들어 있는 소형 첨단 스마트 센서. 배현민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팀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는 글로벌프런티어사업단인 ‘스마트IT융합시스템연구단’ 소속으로 4년째 이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배 교수팀이 만든 헬멧과 태블릿PC 시스템은 ‘너스(NIRS)’로 불린다. 헬멧을 쓰면 인체에 해가 없는 근적외선을 뇌에 보낸 뒤 두개골을 통과해 돌아오는 빛을 감지해 혈류를 측정한다. 지금까지는 이 방식으로 혈류를 측정하기 위해 적외선 감지기만 수십 개가 필요했고, 데이터를 처리할 고성능 컴퓨터도 구비해야 했다. 그런데 배 교수팀이 이를 작은 헬멧과 태블릿PC로 소형화시켰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뇌를 통과해 돌아오는 빛 사이에 생기는 간섭 현상이었다. 헬멧 안쪽에 근적외선 조사 장치 10개, 적외선 감지기 18개를 붙였더니 적외선 감지기에 들어오는 적외선 파장이 모두 동일한 탓에 서로 섞여 신호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배 교수팀은 휴대전화 식별 원리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주파수가 모두 같아도 고유 식별 코드가 있어 서로 혼선이 일어나지 않는다. 연구진은 적외선 감지기 각각에 전용 신호만 구분할 수 있는 스마트 센서를 달아 혼선을 막았다.

배 교수는 “의식 불명 환자의 뇌 기능을 검사하거나 수술 전 마취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등 의료용으로 각광받을 것”이라며 “야구 모자처럼 더 작게 만들어 생활형 뇌 건강측정기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도둑 발견하면 CCTV가 전화로 바로 신고

연구단은 폐쇄회로(CC)TV에 영상 인식 기능이 있는 스마트 센서를 붙이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도둑이 담을 넘어오면 센서가 카메라에 잡힌 모습을 분석해 자동으로 경찰서에 신고 전화를 걸거나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건 처리 팀에 자동으로 전화가 가게 만드는 식이다. 연구단의 최상길 연구교수는 “카메라 화상 분석에 고성능 컴퓨터 대신 전용 스마트 센서가 달린 전자칩을 이용하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또 이건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동물의 몸속에 넣어두면 미세한 움직임을 전기로 바꿔 8.2V 전압과 0.22mA의 전류를 생성하는 스마트 센서인 초소형 나노발전기를 최근 개발했다. 이 발전기를 심장박동 보조기에 연결하면 배터리가 떨어져 몇 년마다 재수술을 받아야 했던 기존 장비의 불편함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경종민 연구단장(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은 “스마트 센서와 같은 정보기술(IT) 융합 시장은 2020년 약 1224조 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보여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