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사정을 보니 서울에 함께 살던 부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지난해 충청도와 경상도로 흩어진 모양이었다. 첫째는 기숙사가 있는 강북의 자사고에 보냈고, 임시로 할머니 집에 있는 둘째 역시 자사고에 지원할 계획이었는데 막막하다고 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집을 나간’ 엄마의 사정이 참 딱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광화문과 여의도의 중간 지점이라 맞벌이 부부가 많다. 동네 어린이집은 대기자가 200명을 넘기 예사고, 초등학교는 근래 드문 과밀학교들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고교 학군이 별로라는 이유로 자녀가 중학생이 될 무렵 목동이나 강남으로 옮기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근에 자사고가 몇 곳 들어서면서 최근 2, 3년 사이 이런 이사가 다소 줄었다. 초등생 학부모 모임에서도 “무리해서 강남에 갈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슬슬 나오기도 했다.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던 오후, 도심 한복판에 모인 자사고 학부모들은 자체 추산 2500명, 경찰 추산 1200명이었다. 자사고 학부모 집회라고 하니 극성맞은 엄마들의 집단행동이라고 눈을 흘기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사고 학부모 중에 맹렬히 특수목적고 준비에 매달렸거나, 엄청난 조기교육을 했거나, 좋은 학교를 찾아 위장 전입을 한 극성파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교육당국이 만들어 놓은 제도적 틀 안에서, 그리고 각자 주어진 여건 속에서 가장 나은 선택을 한 경우가 다수다.
집 나온 엄마를 막막하게 하고, 집에 있던 엄마를 끌어낸 것은 ‘비싼 학교 없애지 말라’는 이기주의만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자사고 재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 체제가 유지되므로 이해 당사자도 아니다.
이들을 화나게 한 더 큰 원인은 조변석개하는 교육정책, 그리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의 엇박자다. 즉, 종횡이 맞물려 학생과 학부모만 동네북으로 만드는 교육 현실이다.
정부가 야심 차게 도입한 자사고에 입학한 게 불과 서너 해 전인데,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공교육을 파괴하는 몹쓸 학교에 다니는 세력으로 몰아간다면 누가 수긍할까. 교육부 기준에 따르면 평가를 통과하는데, 교육청 기준에 따르면 탈락한다면 누가 평가를 신뢰할까.
교육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면 을의 지위에 있는 학부모들은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다. 수월성이냐 형평성이냐를 저울질하며 교육정책을 보완하는 건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수다. 한 아이가 한 학교를 다 마치기도 전에 교육정책을 이리저리 바꾸는 건 교육당국의 ‘갑질’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