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규제에 ‘토종 인터넷’ 신음… 구글 유튜브만 활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분류된 트러블메이커의 ‘내일은 없어’ 뮤직비디오를 국내 동영상 서비스(왼쪽 사진)에서는 복잡한 로그인과 각종 인증 절차를 거쳐야 볼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아무런 인증 절차 없이 볼 수 있다. 각 서비스 화면 캡처
여성가족부가 최근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통해 국내 인터넷 기업들에 새 지침을 내렸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를 포함한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청소년 유해매체물’, 이른바 ‘19금(禁) 콘텐츠’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처음 로그인할 때는 물론이고 감상 직전 또다시 성인인증을 하는 과정을 만들라는 게 골자다. 성인용 콘텐츠를 볼 때마다 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성인 인증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영상뿐만 아니라 음악, 웹툰 등 모든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도 이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된다.
제도 시행은 21일부터다.
유해 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만 생각하면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논리다.
문제는 구글 ‘유튜브’를 비롯한 해외 서비스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토종 인터넷 서비스를 고사시킬 우려가 큰 ‘역차별 규제’라는 것이 국내 인터넷업계의 주장이다.
○ 아무런 인증 없이 ‘19금 뮤비’ 보여주는 유튜브
국내 인터넷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지금도 심하게 역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직접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국내 동영상 플랫폼. ‘내일은 없어 뮤비’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해당 뮤직비디오 목록이 나온다. 이를 누르고 해당 페이지에서 재생 버튼을 클릭하면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입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창이 뜬다. ‘예’를 클릭하면 성인인증이 필요하다는 안내가 표시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도록 돼 있다. 휴대전화 인증을 통해 가입을 완료하고 나니 감상할 수 있었다. 이는 모든 국내 동영상 플랫폼에서 똑같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다음은 유튜브. ‘내일은 없어 뮤비’를 검색하는 과정은 똑같다. 이후부터는 다르다. 그냥 재생 버튼만 누르면 된다.
국내 동영상 플랫폼업체 관계자는 “같은 콘텐츠를 감상하기 위한 절차가 이렇게 다르다”며 “사용자들이 유튜브로 몰리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국경 없이 안방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해외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상 국내 사용자들이라고 해서 편리한 유튜브를 두고 복잡한 인증을 요구하는 국내 서비스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컨설팅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08년 12월 3%에 불과했던 유튜브의 국내 동영상 플랫폼 시장 점유율은 올해 6월 79%까지 높아졌다. 국내 대표 서비스로 2008년 44%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판도라TV’는 올해 6월 3.77%로 떨어졌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게임산업도 국내 서비스에만 적용되는 규제로 피해를 봤다. 2012년 시행된 ‘셧다운제’(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밤 12시∼오전 6시 온라인 게임 접속 금지)는 모든 게임을 대상으로 하지만 ‘롤’ ‘디아블로’ 등 해외 게임을 현지 서버를 통해 우회 접속하면 새벽에도 문제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던전앤파이터’ ‘블레이드&소울’ 등 국산 온라인 게임의 점유율이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 역차별 잔혹사…한순간에 국내 시장 빼앗겨
국내 기업들이 주장하는 인터넷 서비스 ‘역차별의 역사’는 2009년 1월 시작됐다. 공공기관, 인터넷 언론, 포털서비스 제공자 등에만 적용되던 ‘제한적 본인 확인제(인터넷 게시판 운영 시 이용자 본인 여부 확인)’가 하루 방문자 10만 명 이상의 모든 웹사이트로 확대된 것이다.
구글은 이에 대해 사용자 국적을 ‘한국’으로 설정하는 경우에만 ‘동영상 게시판’ 격인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적만 바꾸면 아무런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구글이 ‘시늉’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유튜브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국내 사용자들이 국적을 다른 나라로 설정하는 간단한 조치만 취하면 자신의 신상을 알리지 않고 영상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유튜브로 몰린 덕분이다.
2012년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위헌 판결을 받아 무력화됐지만 이미 국내 동영상 플랫폼 시장은 ‘초토화’ 상태였다. 위헌 판결이 난 8월 유튜브의 점유율은 70%에 이르렀다. 한번 유튜브로 옮겨간 사용자들은 다시 국내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 대신 ‘청소년 보호’만을 위해 등장한 제도가 ‘성인물 이용 전 본인 확인제’다. 2013년 2월부터 시행되면서 국내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대부분 휴대전화 본인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이 역시 해외 서비스는 적용받지 않는다.
‘매번 성인 인증제’가 21일부터 국내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적용되면 복잡한 절차에 한 과정이 더 추가되는 셈이다. 음원이나 웹툰 등 아직 국내 기업이 우위를 차지하는 콘텐츠 분야 시장도 결국 해외 플랫폼 서비스에 내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인터넷 음악서비스 기업은 지난달 이 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예를 들어 ‘멜론’으로 영국 록밴드 퀸(Queen)의 앨범을 듣다가 ‘돈트 스톱 미 나우(Don’t Stop Me Now·퀸의 명곡으로 마약의 명칭과 섹스머신이라는 단어가 언급됐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았다)’가 나오면 음악이 멈추고 성인 인증을 요구하는 식이다. 또 로그아웃 후 같은 기기에서 바로 다시 로그인을 해도 또 한 번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음원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음악이 끊기지 않고 재생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매번 성인 인증제 때문에 사실상 서비스를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웹툰 서비스 기업들도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다. 차세대 한류 콘텐츠이자 포털 기업들의 수출 상품으로도 각광받고 있지만 규제가 결국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국내 인기 웹툰이 해외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서비스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내 기업만 고사
학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크다.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는 국경을 초월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서비스가 얼마든지 국내 서비스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헌영 광운대 과학기술법학과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현재 우리 정부의 인터넷 규제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효율적 규제능력을 보유하지 못해 국내 사업자의 역차별과 글로벌 경쟁력 저하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을 그대로 두면 국내에서 사업을 하려는 인터넷 기업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측은 “법제처도 이러한 방식이 청소년보호법에 부합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며 “해외 서비스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네이버나 다음 같은 국내 기업이 앞장서서 청소년 보호 조치를 받아들여 국내 인터넷 시장의 표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구글 “한국 국내법 존중한다”지만… ▼
청소년들 구글 성인물 쉽게 접근… 부모 속은 부글부글
구글이 ‘청소년 보호 조치’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총괄 상무는 “구글은 한국 국내법을 존중한다”며 “청소년의 음란물 접근을 막기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유튜브에는 ‘안전모드’라는 기능이 있다. 구글 측은 “가족이 함께 보기에 부적절한 동영상 노출을 제한하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하단 메뉴에서 이 기능을 선택하면 ‘부적절 콘텐츠’로 신고된 동영상이나 제목, 내용 설명에 불건전한 어휘를 담은 동영상이 검색되지 않는다. 구글은 “100% 필터링할 수는 없으나 부적절한 콘텐츠 대부분을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자체 규정인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통해 마약 등 범죄 행위를 담은 콘텐츠는 게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동영상이 올라오면 사용자의 신고나 담당 직원의 모니터링을 통해 걸러낸다. 대신 ‘성인에게 적합한 주제’를 다룬 콘텐츠로 판단될 경우에는 ‘제한적 콘텐츠’로 분류해 로그인을 거쳐서 볼 수 있게 했다.
검색 단계에서도 ‘세이프서치’라는 기능으로 성인용 콘텐츠와 이미지, 비디오들을 감출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가 ‘검색 설정 페이지’에 들어가 해당 기능을 선택하면 된다. 미성년 자녀 등이 마음대로 설정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잠금’ 기능도 있다.
하지만 본인 인증 등이 법으로 강제되는 국내 서비스에 비해 빈틈이 많다. 일단 회원 가입 때부터 본인 인증 절차가 없기 때문에 생일을 허위로 입력해 가입하면 청소년도 얼마든지 성인 콘텐츠에 접근이 가능하다. 구글코리아는 “유튜브에 휴대전화 성인 인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용자가 국적 설정만 바꾸면 피해갈 수 있다.
세이프서치 기능은 사용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청소년 자녀보다 인터넷 사용법이 미숙한 부모에게 유용한 방식이라 보기 힘들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온라인 시장조사업체 랭키닷컴과 함께 올 상반기(1∼6월) 모바일 검색서비스 업체별 음란물 검색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구글이 91.2%를 차지했다. ‘세이프서치’ 기능을 쓰는 비중이 높지 않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