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럼 헤다의 ‘정물’(1629년)
완벽한 붓질로 정성을 다해 일상적인 식탁을 섬세하게 재현해낸 17세기 네덜란드의 장르화(풍속화)들을 보면 인생은 아름답고 살 만하다는 긍정적인 기운이 절로 샘솟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성인들의 장엄한 종교화 혹은 왕이나 귀족들의 고귀한 초상화만이 회화라고 생각하던 서양미술사에서 이제까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일상적인 대상들을 이처럼 예술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은 민족은 일찍이 없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의 신산한 역사에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둑에 난 구멍을 밤새 주먹으로 막아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는 동화 속 소년의 이야기가 있듯이 바다보다 땅이 낮은 네덜란드인들은 그들이 사는 땅 대부분을 스스로 개척했다. 신교도인 그들은 구교 국가인 스페인의 가혹한 탄압에 맞서 80년간 저항했고, 마침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음으로써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히 정치적 종교적으로 독립하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쟁취했다.
지난달(7월) 말레이시아 여객기 사고로 193명의 희생자를 낸 네덜란드의 애도 분위기가 너무나 차분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유해가 귀환한 날 교회들은 조종을 울리고, 국민은 1분간 묵념했지만 아무도 검은 옷을 입거나 조기를 걸지 않았다.
로테르담 야외 음악축제 ‘크레이지 섹시 쿨’에는 1만여 명이 모였고, 여러 도시의 주말 축제도 예정대로 열렸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슬픔을 강요하거나 남의 일상생활에 손가락질 하며 죄의식을 불어넣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마음속에 깊은 애도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풍요로운 식탁 위에 해골을 그려 넣어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했던 국민이 아니던가. 역시 네덜란드인들은 쿨하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