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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죽음 앞에서… 조선 文人들의 자기성찰

입력 | 2014-08-09 03:00:00

◇내 무덤으로 가는 이 길/임준철 지음/408쪽·2만 원·문학동네




‘세상에서 삼십이 년을 살고 끝마치노라/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은데/뜻은 어찌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천수만세에/누가 이 들판 지나가려나/손가락질하고 서성대며/반드시 서글퍼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조선 중기 문신 홍언충·1473∼1508의 시 ‘자만’에서)

자만시(自挽詩)란 어찌 보면 참 생뚱맞은 문학작품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죽었다 생각하고 이를 애도하는 내용인데, 살짝 궁상맞다. 살다가 때 되면 떠나는 거지, 뭘 그리 직접 챙기고 앉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선인들의 뜻은 그리 얕지 않은 모양이다. 단순히 죽음을 기린다기보단 삶의 끝이란 가정 아래 평생을 복기하는 게 중요하다. ‘오호 통재라’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셈이다.

저자가 7년여 동안 모은 자만시는 모두 139명이 지은 228수.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다양한 문인들의 상념과 회한이 가득하다. 일제에 조국을 빼앗기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니 한만 남는다’고 절규했던 선비 하동규(1873∼1943)의 비감이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16세기 중인 시인 최기남(1586∼?)의 고독도 절절하다 못해 처연하다.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해지는 울림이 상당하다. 그만큼 자만시는 죽음이란 거대한 장벽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인간적 속내가 오롯하기 때문일 터. 하지만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곡소리를 듣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옛사람들이 지닌 고고한 정신세계를 받아들이기가 벅찬 감도 없지 않다. 솔직히 겁도 나고. 그래도 하나는 알 것 같다. 삶이 행복해야 죽음도 행복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