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침략 전진기지 나고야성… 지금은 흔적만 남은 황성옛터 영웅 이순신은 여기서도 보였지만 유린당한 조선 백성과 산하의 피맺힌 통곡은 들리지 않았다. 무능한 나라의 전쟁 영웅은 그래서 이순신 한 명으로 족하다
심규선 대기자
지난주 규슈의 관문인 후쿠오카에서 제22차 한일포럼이 열렸다.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 등의 전문가들이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여는 회의다. 후쿠오카에서 가라쓰까지는 차로 1시간 20분 남짓. 나고야 성을 둘러봤다. 아마 명량 열풍이 아니었다면 구태여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고야 성은 성이 아니라 성터라는 말이 맞다. 그야말로 황성(荒城) 옛터다. 도요토미가 죽고 왜군이 퇴각하면서 곧바로 파괴됐기 때문에 건물은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한때 17만 m²(약 5만 평)의 광활한 터에 전국의 다이묘(大名)들이 160곳에 진을 치고 있어 장관을 이뤘다고 했으나 지금은 기록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번 한일포럼에도 빛과 그늘이 있었다. 일본은 과거를 제대로 사과했는가, 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기간 한일 정상회담을 못 열고 있는 것은 누구 탓인가,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인가, 미디어가 양국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가, 내년 국교 정상화 50주년은 관계회복의 전기가 될 것인가 등등을 논의했지만 어느 해보다 시각차가 컸다. 악화된 한일관계는 포럼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다. 한일 양국이 중요한 파트너로서 지금처럼 불편한 관계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미래지향적인 성명서를 채택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사가 현이 나고야 성터 근처에 만든 ‘나고야 성 박물관’에서 한일 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확인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박물관 옆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걸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열도와 조선반도의 교류사’를 상설전시하고 있는데 언뜻 ‘침략’을 ‘교류’로 호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전시물 해설과 박물관 소개서는 나고야 성을 ‘침략기지’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고, 한반도에서 건너온 문물이 일본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에 와서야 비로소 역사를 직시하면서 우호관계를 구축하자고 말한다. 거부감이 안 든다.
도요토미는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지금도 중국의 급부상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400여 년이 흐른 지금을 그때와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가 양국 사이에 끼여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거나, 불필요한 갈등을 인내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불행이다.
나고야 성은 조선에 16만 명을 출병시키고도, 예비로 16만 명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도요토미가 죽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됐을지 모른다. 나고야 성에서도 이순신은 보였지만 일본의 야욕과 조선의 무능 때문에 유린당한 백성들과 산천초목의 울부짖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자위가 불가능한 나라, 리더십이 붕괴한 나라, 자국을 과대평가하는 나라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오늘이라고 다를 게 없다. 나고야 성에서 명량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전쟁 영웅은 이순신 장군 한 명으로 족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