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성수기 귀신영화가 안 통한다
이불 속에서 튀어나오는 게 특기인 ‘주온’의 토시오.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한국 공포의 8할은 귀신’이라는데 올여름엔 스크린 속 귀신의 활약이 부진했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세 분 귀신을 모셨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소녀귀신=‘소녀괴담’에서 ‘마스크 귀신’으로 홍보됐는데 (마스크 벗으며) 제 미모에 놀라는 분이 많더군요. 귀신이 너무 청순하다나. 하도 공포의 위기래서 코미디, 로맨스적 요소를 섞어 이미지 변신했어요. 평단 반응은 안 좋았지만 적은 제작비(18억 원)로 48만 명 들었으니 손해 안 본 장사였죠.
▽토시오=한국인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주온’ 시리즈의 주인공입니다. 엄마랑 같이 등장하는데 비디오로 데뷔해서 나중엔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거 아시죠. ‘링’의 사다코 누나와 함께 ‘J호러’의 대표주자라고 부르더군요. 이번 영화까지 시리즈가 10개나 되니까 ‘귀신보다 제작자의 집착이 더 무섭다’고들 해요. 그래도 10대들 덕에 41만 명 왔으니 ‘선방’했죠.
▽샤오아이=‘가위’(1999년)의 리메이크작인 ‘분신사바2’의 샤오아이예요. ‘분신사바-저주의 시작’에도 나와요. 한국 성적(8만 명)은 제가 가장 부진하네요. 리메이크의 새로운 모습보다 원작의 하지원과 너무 닮아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원은 귀신이지만 저는 귀신인지 아닌지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곤란해요. 중국 정부가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중시해서 너무 귀신처럼 보이면 안 되거든요. 어쨌건 중국에선 잘나갔어요. ‘분신사바2’도 중국에선 개봉 첫 주 약 84억 원의 수입을 올렸죠.
―세 분 모두 ‘나는 별문제 없다’는 건데, 요즘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바닥을 치는 건 왜죠? ‘명량’은 1000만을 넘겼다는데, 100만 넘긴 공포영화 찾기가 어려워요.
▽토시오=남 핑계대긴 싫지만 요즘 대형 배급사들은 큰 영화 밀어주느라 저희를 외면해요. 상영관 잡는 거 자체가 힘듭니다. 손님 안 드는 자정이나 조조영화 시간에만 끼워 넣는데, 누가 아침에 귀신 영화를 봅니까!
▽샤오아이=‘분신사바-저주의 시작’은 원래 이달 14일 개봉 예정이었는데 9월 말로 옮겼어요. 틀어줄 상영관이 없대.
▽소녀귀신=세상이 험해진 탓도 있죠. 실화가 배경인 스릴러의 범죄자가 우리보다 무서우니까. 제작자들도 반성해야 해요. 1990년대 말 ‘여고괴담’ 인기 이후 학원 공포물만 계속 만들어요. 제작비 때문이죠. 그런데 제대로 무섭게 하려면 돈 좀 써야지.
공포영화 대목인 여름이지만 귀신들의 힘은 예전만 못하다. 올여름 개봉한 유일한 국내 귀신 영화 ‘소녀괴담’의 소녀귀신(일명 마스크 귀신).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샤오아이=걔들은 귀신이 아니라 악령이지! 우리랑 급이 달라. 우린 저마다 사연도 있고, 드라마가 있어요. 이게 굉장한 장점인데 우리가 아직 좋은 감독이나 제작자를 못 만나서 그런 것 같아. 설상가상으로 나는 정부 검열 문제도 있고….
국내에선 부진했으나 중국에선 흥행한 ‘분신사바2’의 샤오아이.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토시오=일본에는 귀신과 요괴를 다룬 고전 콘텐츠가 많은 데다 최근엔 실화 괴담 중심으로 B급 콘텐츠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저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다고요.
▽소녀귀신=물론 우리에게도 변화가 필요하죠.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좀비들도 요즘엔 이미지 변신해서 성공했잖아요. 좀 탄탄한 이야기를 가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