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문화부 기자
학생 수십 명을 일렬로 세운 영어교사가 손바닥 라이트훅을 시계추마냥 반복하며 일일이 따귀를 후려쳤다. 그러고는 살짝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전부 눈 감아”라고 말했다. 찌익, 종이 뜯는 소리. 이어서 희미하게, 부스럭부스럭.
궁금함에 실눈을 떴다. 교사는 연습장을 찢어 손에 묻은 피를 닦고 있었다. 20여 년 전 서울 어느 고등학교 교실의 기억이다. 그날 그 일은 그곳 학생들에게 사건 아닌 일상이었다. 수업 중 갑자기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엎드려뻗쳐”라고 소리친 음악교사는 잠시 후 부러진 탁상다리를 둘러메고 걸어왔다. 수학교사에게 말대답한 급우는 대걸레자루로 두들겨 맞다가 병원으로 옮겨져 터진 머리를 꿰맸다.
‘삼국지’의 동탁을 비롯해 역사 속 허다한 위정자가 ‘공포’를 요긴한 정치도구로 썼다. 고문, 연좌와 멸족, 공개처형, 효수는 모두 ‘대들면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일렬종대 따귀, 탁상다리 엉덩이찜질, 대걸레자루 난타는 죄다 학기 초의 일이었다. ‘교사 눈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대꾸하지 마라’ ‘떠들지 마라’ ‘숙제 빼먹지 마라’ 12년간 만난 교사 수십 명 중 태반이 훈계의 메시지를 말 아닌 몸을 통해 전했다.
육군 28사단 이 병장은 왜 얻어맞아 실신한 윤 일병을 비타민주사로 깨워가며 때렸을까. 해병 1사단 신병은 왜 소변기를 혀로 핥아야 했을까. 20년 전 교사의 라이트훅이 10여 회를 넘겼을 때, 교실 어느 구석에도 이미 메시지 따위는 없었다. 폭력은 언제나 스스로 폭주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따귀와 대걸레자루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을 하건 제대를 하건 여전히 가까운 건 주먹이다. 법은 멀리나마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후임을 집단폭행해 절명시킨 이 병장, 소변기를 핥도록 지시한 선임병은 군대 밖에도 득실댄다. 강자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푸는 버릇이 있다면, 그러면서 ‘다들 비슷하게 사는데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생각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누군가의 이 병장이다.
아프게 헤집어 가능한 한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어느새 ‘일부의 문제로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는 익숙한 변명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 눈치다. 이러구러 이 또한 지나가려나. 그렇다면 여기가 무간지옥이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