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이렇게 시작하는 산케이신문의 기사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기정사실화하고 레임덕의 원인으로 사생활을 지목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8월 초 같은 조사에선 8주 만에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부정적 평가를 넘어서며 지지율이 반등했다.
재난 같은 대형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원수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은 정색하고 비판할 주제라기보다는 국민감정과 관련된 미묘한 사안이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가족 및 비서실장 부부와 함께 연극을 관람했다가 야당인 한나라당의 질책을 받았다. 열린우리당은 2011년 구제역으로 축산 농가가 다 죽어 가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뮤지컬을 보며 웃고 박수쳤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문화행사를 즐길 때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시비는 대통령에 대한 저급한 정치공세다.
산케이 보도가 갖는 문제의 핵심은 한국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행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있지 않다.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母體),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기사에는 대통령과 남자, 유부남 등 삼류 주간지가 한물간 여배우의 사생활을 추적하는 듯한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기사에서 나는 국가원수에 대한 명예훼손 이전에 한 여자에 대한 모욕감을 느꼈다. 만일 박 대통령이 남자였어도 이런 식으로 썼을까. 여자라면 누구든 공분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토 다쓰야 지국장을 고발해야 하는 것은 보수단체가 아니라 여성단체여야 할 것 같은데도 평소 목소리 높기로 유명한 여성단체들은 논평 한 줄 내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우리 여성단체가 여성 대통령이 당한 모욕에 대해서는 유독 야박한 것 같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당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국회에서 수차례 증언했다. 그런데도 산케이는 이 말은 무시하고 기사 작성의 근거로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 ‘찌라시’를 들었다. 유서 깊은 언론이 증권가 정보지에 근거해 기사를 쓴 것은 스스로를 찌라시 수준이라고 인정한 것 아닌가.
팩트 체크는 기자의 본분이며 더구나 상대는 일국의 대통령이다. 수습기자도 아니고 오랜 경륜을 가진 지국장이 이런 기사를 쓴 것은 산케이가 ‘한국 대통령 때리기’로 일본 내에서 혐한 감정을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