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호준-홍성흔-조인성(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 이승엽·이호준·홍성흔·조인성…베테랑타자들이 사는법
이승엽 25호…역대 최고령 30홈런 눈앞
홍성흔 15홈런·조인성 후반기 3할 타율
철저한 자기관리…타격폼 찾기 등 성실
영화로도 제작된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머니볼’의 주인공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은 데이비드 저스티스를 트레이드해온다. 저스티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빈 단장도 현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주목한 것이 달랐다. 저스티스의 스윙 스피드나 주력 같은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공을 보는 눈을 믿고 데려온 것이다. 선구안은 ‘나이가 들어도 쇠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믿음에서 ‘늙은 타자’를 영입한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한물 간 선수 취급하거나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까 백안시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구단들이 음미할 대목이다.
● ‘해가 지지 않는’ 올드보이 전성시대
삼성 이승엽(38), NC 이호준(38), 두산 홍성흔(38), 한화 조인성(39). 불혹을 코앞에 둔 타자들의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다. 가히 ‘올드보이 타자’들의 전성시대다. 밟는 길이 곧 전설이 되는 이승엽은 11일 목동 넥센전에서 시즌 25호 홈런을 터뜨렸다. 5개의 홈런을 보태면 종전 펠릭스 호세(36세·2001년 36홈런)를 넘어서 프로야구 역대 최고령 30홈런 타자로 올라선다. 또 11일까지 결승타를 15개나 쳐내 전체 1위다. 이호준은 NC의 4번타자이자 정신적 리더다. 2년 연속 20홈런에 1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최근 4년간 OPS(출루율+장타율)가 모두 0.830을 넘는다.
홍성흔 역시 건실한 성적을 내며 두산 클럽하우스 분위기메이커를 자임하고 있다. 3할 타율에 15홈런으로 용병타자 호르헤 칸투(18홈런) 다음으로 팀 내 홈런이 많다. SK에서 트레이드된 조인성은 한화 후반기 반전의 선봉장이다. 투수리드는 물론, 결정적일 때 터지는 클러치 능력으로 빛난다. 11일까지 후반기 타율은 0.355에 달한다.
● ‘올드보이 타자’들의 승승장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올드보이 타자’들은 체력의 열세를 잘 알고 있다. 그 약점을 경험이라는 지혜로 극복하는 방책을 안다. 무작정 훈련이 아니라 자기 몸을 알고 그에 맞춰 단련한다. 감독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기에 ‘마이 페이스’가 가능하다. 몸 상태에 따라 훈련시간을 조정하고, 배트 무게를 바꿔주는 등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알기에, 안 될 때 자기를 다스릴 절제능력이 있다.
프로야구에 새로운 스타가 안 나온다고 한탄한다. 이런 선수들처럼 치열한 자기관리를 하는 선수가 왜 없는지부터 성찰해야 될 것임을 ‘올드보이 타자 전성시대’는 시사하고 있다. 베테랑 선수는 여러 모로 구단에 부담스런 존재겠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만큼 값어치 있는 재목도 없다.
사직|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