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그는 양평까지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아침 식탁에서 아내와 했던 가벼운 말다툼을 떠올렸다.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아내는, 분명 휴가 날짜를 조정해 보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아내의 섣부른 바람이었을 뿐,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럼 미리 얘기했으면 나라도 휴가 날짜를 뒤로 미뤘을 거 아니야. 그는 쓸모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성을 냈다. 아내의 출판사는 여름 특수 시장을 노리고 대대적인 홍보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그럼, 어떡해. 애들도 방학인데. 둘 중 한 명이라도 애들하고 함께 있어야지. 아내도 지지 않았다. 아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좀 암담했다. 큰아이가 여덟 살, 둘째가 여섯 살, 막내가 다섯 살이었다. 모두 사내아이들이었다. 아내 없이 아이들 세 명과 온 종일,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함께 있을 생각을 하니 이건 휴가가 아닌, 홀로 정글에 툭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게 무슨 극한 휴가도 아니고….
실제로 아내가 출근하고 난 후, 세 아이는 쉴 새 없이 소파 위에서 점프하면서 개구리 흉내를 냈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청개구리, 엄마가 죽자 냇가에 무덤을 만든 청개구리, 비가 올 때마다 엄마 걱정 때문에 개굴개굴 울게 된 청개구리…. 아이들은 얼마 전 아내가 읽어준 동화책 그대로 집안 곳곳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아래층 사람하고도 사이가 안 좋은데…. 그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양평 계곡은 변한 게 별로 없었다. 아름드리나무도 그대로였고, 조약돌도 변함없었다. 단 예전엔 아무도 찾지 않던 곳인데, 군데군데 텐트를 치고 자리를 깐 피서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무슨 무슨 동호회 플래카드를 내건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이들과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개구리나 작은 피라미 같은 것을 보고 갈 작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곧장 다시 개구리 흉내를 내면서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계곡 물 가운데로 점프, 다시 점프. 아이들 몸은 이내 흠뻑 젖었고, 그런 아이들을 말리려 계곡 물 안으로 뛰어든 그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위아래 모두 흠뻑, 젖고 말았다. 아이 씨, 갈아입을 옷도 수건도 갖고 오지 않았는데…. 그는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난 듯 그의 머리 위로 계속 물을 뿌려댔다. 그는 머릿속으로 계속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경구만 떠올렸다.
예상치 못한 일은 그 뒤로도 계속 벌어졌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이를 어쩌지, 바위 위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동호회 아주머니 한 명이 수박 몇 조각을 갖고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거 좀 드세요.”
“엄마도 없이… 에고 아빠가 고생이 많네.”
그는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몇 번 긁적거렸다.
“그래, 애들 엄마는 언제 세상을 뜬 거요?”
그는 뚱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그러면서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황당하고 기가 막혔지만, 막내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 명 두 명 다른 사람들이 복숭아와 포도를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머니와 똑같은 말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정말이지 개굴개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