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전쟁 중인 이스라엘 병사, 목숨 건 작전 끝나면 생활관 뒹굴며 문고본 읽어 미군은 모병제로 전환한 뒤 상관 살해 프래깅 사라졌다 청소년의 인식과 행동 변화에 軍의 부적응이 더 문제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70년대 군대에 집합과 구타는 있었어도 윤 일병이 당한 것 같은 무지막지한 살인폭행은 없었다. 고참들이 졸병에게 화장실 변기를 핥게 하거나 어머니와 누나를 창녀라고 욕하거나 치약을 먹이는 혐오스러운 짓도 하지 않았다. 지금 군에는 청소년들의 악성 이지메 풍조가 유입된 것 같다. 구타를 당하다 숨진 윤 일병은 비장이 파열되고 복부와 심장과 폐에까지 피가 고여 있었다. 죽일 심산이 아니라면 이렇게 때리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컴퓨터 게임의 영향인지 잔혹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 외동아들로 자라 집단생활이나 힘든 훈련에 적응을 못하는 심약(心弱)한 병사도 많다. 한쪽은 너무 악랄해서 문제고 다른 쪽은 너무 유약해서 문제다. 최근 일련의 사고는 청소년들의 변화에 군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일어난 현상이다.
군은 기본적으로 외적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집단이다. 이 폭력이 내부를 향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동료와 상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을 쏜 임 병장 사건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난 프래깅(fragging)을 닮았다. 프래깅은 적과 전투 중에 상관이나 동료를 살해하는 행위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 미군 장교 230명이 자신의 지휘를 받던 병사들 손에 프래깅을 당해 죽었다. 프래깅으로 의심되는 의문사도 많았다. 베트남에 억지로 끌려온 군인들의 사기 저하와 기강 해이로 빚어진 사고들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는 베트남전 같은 프래깅은 없었다. 미군이 모병제(募兵制)로 전환해 전원 직업군인으로 충원하면서 이 문제를 거의 완전하게 해결했다.
징병제(徵兵制)를 실시하는 나라 중에서 우리 군이 배울 만한 나라는 노르웨이와 이스라엘 정도다. 유태영 농촌청소년재단 이사장(전 건국대 부총장)은 이스라엘에서 석·박사 학위를 박고 벤구리온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한국군의 용역을 받아 이스라엘 군의 교육제도를 연구해 두툼한 보고서를 제출한 적도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나라의 존망이 걸린 숱한 전쟁을 치렀고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지금도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이다. 어느 쪽이 정의냐를 따지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으로선 생존이 달린 전쟁이다.
유 씨는 “이스라엘 군은 병사들에게 애국애족의 정신을 불어넣고 인생교육 사회교육까지 함께 시킨다”고 말한다. 군이 명저(名著)의 다이제스트(요약본)를 만들어 병사들이 생활관에서나 배낭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읽게 한다. 군에서 요악본을 읽은 젊은이는 사회에 나가 원본을 찾아 읽기도 한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군에서 사회 진로를 정하고 평생 살아갈 기술을 배운다. 한국군이 바로 서려면 “썩는다” “2년 버린다”는 식으로 군생활을 비하하는 말부터 사라져야 한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