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엔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의 시위였다. 11일의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경제와 민생 관련 법안 19개를 하나하나 소개했다. 단순히 법안 내용만 소개한 게 아니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누가 혜택을 보는지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과거에 이런 예가 있었던가.
박 대통령은 “이 법안들의 내용을 국민들이 정확하게 들으신다면 서로 ‘저건 나를 위한 법안 아니야?’ ‘저게 내 일 아니야?’ 이렇게 모두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과연 정치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봐야 할 때”라고 질타했다. 누구를 향해, 왜 시위를 벌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즉각 “대통령이 남 탓을 한다”고 쏘아붙였다.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빈곤층에 대한 지원 기준을 완화해 더 많은 빈곤층에 혜택을 주겠다는 법안이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2013년 9월 마련됐다. 올해 10월 시행 예정으로 2300억 원의 예산까지 책정돼 있는데도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정치인들이야 무감각할지 몰라도 이 법안의 의미를 아는 이해 당사자들은 얼마나 법안 통과를 학수고대하겠는가.
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툭하면 이런 법안들을 볼모로 잡곤 한다. 정부가 ‘귀하게’ 여기는 법안일수록 볼모의 대상이 되기 쉽다. 정부와 여당에 더 큰 고통을 안겨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이해 당사자들이자 말 없는 다수의 국민이다. 그들은 정부와 야당 중에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세월호 문제에서도 야당은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난 진상 규명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김영란법, 유병언법, 정부조직법, 공직자윤리법 등의 제정, 개정으로 국가를 혁신해 자신과 국민 전체의 안전을 강화하는 데 더 관심이 있지 않을까.
새정치연합 사람들은 연령별 인구 구성비나 국민의 이념 성향 분포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불리한 처지를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다. 그러나 원래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 소수의 자기편만을 바라보며 다수의 국민을 외면하는 외눈박이 정치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밑에서 위쪽을 향해 불리한 축구경기를 자청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이다.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투쟁 정당의 이미지를 벗겠다” “낡은 과거와 결별하겠다”고 하자 다른 쪽에서 즉각 ‘선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반발이 튀어나왔다. 이들은 여야 원내대표 간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무산시켰고 결과적으로 경제, 민생 관련 법안들의 통과도 저지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