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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車 파업손실 13년간 19兆… 생산성 꼴찌

입력 | 2014-08-18 03:00:00

[車노사, 갈등넘어 조정으로]<상> 연례행사 같은 파업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3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48개국 중 25위였지만 노사협력 분야는 132위에 그쳤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지만 노사관계는 열등생 수준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가 22일 파업에 돌입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다. 현대차는 1987년 노조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파업으로 인해 총 125만4649대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국내 5개 자동차업체의 지난해 전체 내수 판매량(138만1091대)과 맞먹는 규모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는 이미 올해 38시간 부분파업을 단행했다. 이에 비해 세계 1∼3위 자동차업체인 도요타, 폴크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는 노사 대타협을 통해 친환경차와 스마트카 등 미래 자동차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노사 관계도 갈등이 아닌 조정의 문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자동차는 2012년 ‘맥스크루즈’와 ‘그랜드 스타렉스’ 주문량이 밀려들자 울산4공장에 1000억 원 이상을 들여 시간당 40대씩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했다. 이후 사측은 울산4공장 노조에 시간당 생산 대수를 32대에서 38대로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잔업과 특근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며 1년 동안 증산을 거부하고 있다. 현재 중동 중남미 등에서 그랜드 스타렉스는 주문량이 3만여 대 밀려 7개월 뒤에나 받을 수 있다. 맥스크루즈도 북미와 유럽에서 1만 대 이상 주문이 밀려 딜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원고(高)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직된 노사 관계로 인한 생산성 하락과 반복되는 파업으로 국내 자동차업계가 생산기지로서의 경쟁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올해는 통상임금 이슈까지 겹쳐 임금 및 단체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 매년 되풀이되는 파업

1987년 현대자동차 노조가 설립된 이후 파업을 하지 않은 해는 1994년과 2009∼2011년 등 4번뿐이었다. 매년 ‘상견례→10여 차례 교섭→교섭 결렬 선언→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파업 결의 및 찬반 투표→파업→협상 타결→격려금 수령’으로 이어지는 파업의 쳇바퀴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자동차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기반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곳만 생산을 멈춰도 전체 생산이 마비된다.

그나마 2004년까지는 7월 말이나 8월 초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최근에는 마지노선이 추석 이전으로 늦춰지면서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예컨대 기아차가 28일 선보이는 ‘올 뉴 쏘렌토’가 잘 팔리더라도 임단협이 난항을 겪으면 증산 협의를 시작할 수조차 없게 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업계는 임단협 과정에서 파업으로 10만3895대의 생산차질을 빚어 1조9508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임단협 교섭 중 파업으로 벌어진 생산차질은 총 128만8711대, 금액으로는 19조7070억 원에 이른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노조는 관행적으로 파업을 하고 사측은 ‘생산제일주의’로 당장 차를 팔기 위해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덜컥 들어주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증가하는 비용이 협력업체나 사내하청 근로자들로 전가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고 지적했다.

매년 벌어지는 파업과 증산 합의 난항 등은 생산성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총 시간을 의미하는 HPV(hour per vehicle)가 현대차 국내 공장(울산 전주 아산)은 지난해 말 27.8시간으로 전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낮았다. 편성효율도 국내 공장이 57.8%로 가장 뒤떨어졌다. 57.8명이 할 일을 100명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은 르노그룹의 19개 공장 중 생산성은 6위로 우수한 편이지만 시간당 인건비는 프랑스 상두빌 공장 다음으로 높다. 부산 공장 인건비는 프랑스 상두빌 공장의 81% 수준이다.

○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현안 산적


이경훈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2009∼2011년 노사협상을 무파업으로 이끈 경력이 있다.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자 노조는 파업 없이 기본급을 동결했고 사측은 격려금 500만 원과 함께 주식 40주(당시 452만 원)를 지급했다. 1994년 파업 없이 임협을 마무리 지었을 때도 이 위원장이 노조 수석부위원장이었다.

실리를 추구하는 이경훈 위원장이 올해 재선출되면서 임협을 무분규로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통상임금이 발목을 잡았다. 노조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소급분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15일 미만 근무한 이들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아 고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도 이슈다. 앞서 현대차 노사가 근무체계를 하루 8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8+8’ 체계를 2016년부터 실시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노조에서 시행 시기를 앞당기자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노동 강도 강화나 급여 손실 없이 근무시간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반면 사측은 “시간당 생산량을 늘려 전체 생산물량을 유지해야만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위기 앞에 뭉친 한국GM- 쌍용차 노사▼

경영난 따른 구조조정 겪은 뒤… 노사 힘모아 무분규 임단협 ‘전통’

올해 무분규로 임단협을 마친 한국GM과 쌍용자동차의 공통된 특징은 극심한 경영위기를 겪은 뒤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노조가 타협의 의지를 보이자 사측은 생산 물량을 보장하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 협상을 타결시켰다.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꼽혔던 한국GM 노조는 출범 첫해인 2002년부터 올해까지 총 6차례 파업 없이 교섭 타결을 이뤄냈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 주에 1, 2일밖에 조업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던 경험과 2001년 1750여 명의 정리해고 사태를 지켜보면서 노사관계에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올해 임단협에서도 노조는 사측에 “미래 발전전망을 제시하라”고 요구했고 사측은 “군산공장에서 차세대 크루즈를 생산하겠다”고 보답했다.

쌍용차는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거친 후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을 이끌어냈다. 2012년에는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과 쌍용차, 노조가 회사 정상화에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의 3자 협약서를 체결했다. 올해 노사는 내년 초 선보일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100’에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협상을 진행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김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