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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두려움과 죄의식과 위선적 민주주의

입력 | 2014-08-18 03:00:00


《 잘 돌아가는 가정이 그렇듯이 내 집에는 무정부주의와 독재정치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네. ―‘낯선 땅 이방인’(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마티·2008년) 》

올해 여름휴가에 고른 책은 1961년 미국에서 발표된 SF소설(을 빙자한 사회풍자소설)이자 ‘히피들의 성전’으로 불리는 ‘낯선 땅 이방인’이다. 화성 탐사선에서 태어난 사생아 마이크가 화성인의 손에 키워진 뒤 지구인으로 복귀하면서 겪는 우여곡절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책은 마이크의 엉뚱한 시선과 그의 정신적 스승인 지구인 주발 허쇼의 재기와 독설 넘치는 비아냥으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마이크에게 필요한 관습을 가르치려는 여자 주인공 질을 주발은 이렇게 쏘아붙인다.

“지금 우리한테는 신의 은총과 천운에 힘입어 우리 종족의 기이한 금기사항에 물들지 않은 인격체가 와 있어. 그런데 당신은 기껏 그를 두려움 때문에 고분고분하게 구는 또 한 명의 순응자로 만들겠다는 건가?”

제3차 세계대전 직후 ‘두려움과 죄의식과 신앙 상실’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에서 작가 하인라인은 주인공 주발의 집을 무정부주의와 독재정치가 적절히 혼합된 작은 이상향처럼 그린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완벽한 경제체제가 아니며 자본주의 전후의 여러 체제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또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데 통용될 수 없고 통용돼서도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특히 국가 수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너무 많은 권한을 위임해버리면 결국 나와 내 주변의 자잘한 직접민주주의 역량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고 만다고 봤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직접민주주의가 끊임없이 교육되고 실천돼야 대의제 민주주의도 제대로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히피가 생겨나던 무렵의 미국 상황이 민주화 실험 30년을 앞두고 비척대는 한국과 자꾸 겹치는 건 비단 이 책을 읽어서만은 아니리라.

박유안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