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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
지금으로 따지면 은행이 사람만 보고 보증도 없이 대출해준 셈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2.5%에서 2.25%로 내린 것을 계기로 은행돈을 빌려 수익을 낼 기회가 커졌다고 여기는 개인이 많아졌다.
허생이 변 부자에게서 빌린 돈을 100배로 불린 것과 같은 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속 은행은 개인의 됨됨이(신용)보다 담보에 관심이 더 많다. 창업 예정자의 기술력을 평가한다고 해도 실제 대출 때는 보증기관의 보증이 필요하다. 기준금리 인하가 개인이나 창업자에게 축복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이유이다.
재테크 관점에서 개인이 특히 주목할 점은 정부의 세 번째 타깃이 개인이 아닌 모험자본이라는 대목이다. 정부는 주로 벤처캐피털, 연기금 등이 투자를 주도하기를 기대한다. 한때 투기자본이라며 비판 받던 일부 금융사도 이번에는 정부 정책에 부응해 돈의 물꼬를 터줄 수 있는 수단으로 대접 받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모험자본은 자금력과 위험관리능력을 갖고 있어서다. 돈이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시장이 요동을 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허생의 투자 방식이 매점매석이었듯 모험자본도 투자 철학에 도덕적 흠결이 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시중에 돈이 돌도록 하는 위험한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주체는 허생 같은 자금력 있는 기관투자가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개미들이 투자의 정글에 뛰어들길 원하지 않는다. 개미를 보호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증시 가격 제한 폭을 현행 상하 15%에서 30%로 늘리려는 것도 ‘개미들이여, 삐끗하면 쪽박 찰 테니 들어올 생각조차 말라’는 경고다. 금리가 내렸다고 일부 직장인이 엄청난 자금을 빌려 투자하려 한다면 정책의 행간을 잘못 읽었다.
금리는 다시 오르게 돼 있다.
그러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올라 원자재 수입가격이 상승한다. 인플레이션도 온다. 한은으로선 경기 부양 기조를 접고 금리를 다시 인상하려 할 수 있다. 금리 인상은 변동금리로 대출을 잔뜩 받은 사람에게는 이자 폭탄이라는 재앙이 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지금, 결국 개인이 선택할 투자 방법은 간접투자다.
허생 같은 전문가가 하는 투자에 얹혀 가라는 말이다. 주식 투자 한도를 늘릴 예정인 퇴직연금에 불입액을 늘리는 게 좋은 방법이다. 내년부터는 퇴직연금 세액공제 한도가 300만 원 추가돼 세금 환급액이 최대 36만 원 증가한다. 퇴직연금에는 확정기여형(DC형)과 확정급여형(DB형)이 있는데, DC형 가입자는 기존 퇴직연금 계좌에 300만 원 한도로 추가 불입하면 된다. DB형 가입자는 회사에서 ‘퇴직연금 가입 확인서’를 발급 받은 뒤 은행, 보험사, 증권사를 통해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만들면 추가 불입할 수 있다.
대출이 별로 없는 무주택자라면 은행 대출을 더 받아 자기가 들어가서 살 집을 사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이달 초부터 모든 금융권에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같아졌다. 과거 대출을 많이 받으려고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이용했다면 이번 기회에 금리가 낮은 시중은행 대출로 갈아타기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새롭게 완화된 기준에 따라 신규 대출을 받을 때는 냉정하게 따져서 총 대출금이 자신이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허생은 이야기 후반부에 변 부자에게서 빌린 1만 냥에 이자 9만 냥을 합친 10만 냥을 갚았다. 변 부자가 이자가 너무 많다고 하자 허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는 당신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보러 와서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10만 냥은 지금으로 치면 한 20억 원 정도 될까. 허생의 행동은 오늘로 치면 빚을 청산한 뒤 은행(변 부자)에 돈을 맡기고 평생 연금(양식과 옷)을 받는 즉시연금에 가입한 격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