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검장 사건 진실게임 양상
○ 경찰 “사건 현장 주변서 동영상 7, 8개 확보”
여고생 A 양(18)은 12일 밤 귀가하다 제주소방서 인근 김밥집 옆 공터에서 한 남성이 바지 지퍼를 내린 채 음란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A 양은 겁을 먹고 이모와 이모부에게 전화를 걸어 “무서워서 집에 못 가겠다.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했다. A 양은 이 남성이 대로변인 김밥집과 부근을 돌며 10분가량 음란행위를 시도하는 장면을 봤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하지만 김 지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산책을 마치고 관사로 돌아가기 직전 김밥집 야외 의자가 보여 잠깐 쉬기로 했다. (먼저) 의자에 앉아있던 남성이 바지춤을 올리는 것 같더니 자리를 떴는데,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앉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김 지검장의 손과 바지에서 정액검사를 했지만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사건 현장 주변에 설치돼 있는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 화면 등 7, 8개의 동영상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특히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화면은 음란행위가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행위자 식별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지검장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옷차림은 비슷해 보인다”며 “조만간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체포 당시 왜 신원 밝히지 않았나
김 지검장은 13일 0시 45분경 오라지구대로 연행됐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신원 확인을 거부했다. 김 지검장은 ‘성명불상 현행범’으로 제주 동부경찰서로 인계됐는데 유치장 입감 직전에 동생 이름을 댔다. 지문조회 결과 사실과 다르게 나타나자 그제야 본명을 밝혔다. 이때도 경찰은 ‘김수창’이 제주지검장인 사실은 몰랐다.
김 지검장은 17일 오전 10시 50분경 서울고검 기자실을 예고 없이 방문해 “하루 이틀 해명하면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검사장이라 그러면 난리가 날 것을 우려했다”면서 “차라리 신분을 밝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고 해명했다. 또 “검사장으로서 제 신분이 조금이라도 조사에 방해가 된다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인사권자의 뜻에 따르겠다”며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 억울하게 실추된 저와 검찰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김 지검장이 사실상 제주지검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퇴를 선뜻 종용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에 체포됐을 때 신분을 속인 것 자체가 징계 사유에 해당돼 이를 근거로 사표를 받을 수 있지만 의혹을 서둘러 덮으려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대검 감찰본부는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자체 진상조사를 중단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