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노사, 갈등넘어 조정으로]<하> 노사화합이 만든 세계 1위
대표적 강성 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밥 킹 위원장은 2011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강경노선을 접었다. UAW는 그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업체와 단체협약을 맺으면서 과도한 복지비용을 줄이는 데 합의했다.
회사부터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일본 자동차업체의 지배력이 커지는 가운데 고유가로 미국 업체들의 주력 수익 차종인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이 안 팔리기 시작했다. GM의 미국 점유율은 1995년 33%에서 2007년 25%로 떨어졌다. 2007년에만 387억 달러(약 39조 원) 순손실을 냈다. 2008년 세계 1위를 도요타에 내줬다.
○ GM, 기득권을 내려놓다
2007년 당시 GM의 차량 1대당 생산비는 도요타 미국 공장보다 약 1000달러 더 높았다. 복지비용 때문이었다. GM은 퇴직자와 가족의 건강보험비를 죽을 때까지 지급하고 있었다. 근로자를 해고하면 5년간 평균임금의 95%를 지급하는 ‘잡뱅크제’도 운영했다.
그해 UAW는 노사대타협을 통해 3년간 기본급을 동결했다. 퇴직자 건강보험비는 ‘퇴직자 의료비펀드(VEBA)’를 만든 뒤 펀드가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신규 입사자에게는 더 적은 월급을 주는 이중임금제도 도입했다. 이에 사측은 2007년 아웃소싱을 유예하기로 했다.
2009년 6월 파산 보호를 신청하자 노조는 2015년까지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북미공장 인력을 9만 명에서 6만9000명으로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협조했다. 사측은 대신 사정이 나아질 경우 해고된 직원을 우선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 폴크스바겐, 일자리 나눠 고용 보장
폴크스바겐은 불황을 맞아 1993년 판매량이 296만 대로 전년 대비 13.7% 급락했고 19억 마르크(약 1조3270억 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냈다. 이에 폴크스바겐은 독일 내 근로자를 10만3200명에서 1995년까지 7만1900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 노조는 3만 명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선택했다. 조업 시간을 주당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줄였다. 소득이 12% 감소했지만 기꺼이 감내했다. 사측은 대신 2년간 고용을 보장했다.
1997년 폴크스바겐은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했다. 성수기에 연장근로를 할 때 받아야 할 수당을 계좌에 적립시킨 뒤 비수기에 일감이 줄어들면 적립된 수당을 꺼내 받아 임금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제도였다. 이를 통해 고용 유연성을 높일 수 있었다.
탄탄한 노사관계에 힘입어 폴크스바겐의 판매대수는 2002년 500만 대에서 지난해 세계 2위인 973만 대로 뛰어올랐다. 최근엔 ‘2018년 세계 1위 자동차그룹’이라는 비전을 밝혔다.
○ 도요타, 1953년 이후 무분규
일본 도요타 노조는 1950, 1953년 구조조정과 임금인상안 등을 두고 대대적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1954년 이후엔 일본 공장에서 한 차례의 파업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는 1956년 ‘도요타 노조 강령’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산업, 기업의 발전은 차의 두 바퀴”라며 협력적 노사관계를 선언했다. 한편 사측은 1950년 이후 단 한 명도 강제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오일쇼크와 엔고 등을 겪으면서도 1950년부터 2007년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이강성 삼육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에는 현장에 긴급하게 추가 노동력이 필요하면 노사 간 교섭을 거쳐야 하는 한국과 달리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하는 ‘응원제도’가 있다”며 “GM 폴크스바겐 도요타를 살린 것은 노사의 위기의식이었다”고 말했다.
문용갑 한국갈등관리조정연구소장은 “노사관계가 원만한 기업들은 노사가 서로를 존중하고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며 “국내 노사도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최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