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불고기 정식 1인분에 50∼70달러를 받는 북한 ‘해당화관’의 호화로운 실내 모습. 지난해 처형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해당화관의 건축을 맡았고 운영권까지 장악했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지난해 8월 중국 관영 시사주간지 ‘환추(環球)시보’에 평양에서 1년여 근무한 신화통신 평양특파원 두바이위(杜白羽) 기자의 ‘평양 상류층 생활 탐방기’가 실렸다.
1년이 더 지난 지금 두 기자는 수수께끼를 풀었을까? 사실 그의 의문에 대한 답은 별로 어렵지 않다.
북한에서 큰돈 버는 최고의 방법은 다름 아닌 국가 돈을 떼먹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외 수출입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될 조건을 갖고 있다. 비결은 이면계약에 있다. 북한에서 금이나 무연탄, 철광석 같은 지하자원에 대한 수출 권한은 노동당 38호실이나 군부, 특수기관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자원을 수출할 때 장부상엔 t당 얼마 팔았다고 적고는 실제로는 더 많이 받아 따로 챙긴다.
지난해 12월 처형당한 장성택의 죄목에는 중국에 무연탄을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대목이 있다. 당시 국제시세가 t당 130달러 안팎인데 75달러에 팔았다는 것이다. 북한 무역일꾼들이 어리석어서 그렇게 싸게 팔았을까. 전혀 아니다. 75달러는 장부상의 가격일 뿐이다. 실제로는 100달러 이상 받았고 차액인 25달러 이상은 따로 받아 장성택과 측근들이 나눠 먹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 무연탄 수출액이 14억 달러 가까이 됐으니 무연탄 수출을 독점한 장의 측근은 최소 수억 달러를 챙겼을 것이다.
이런 수법은 북한에선 매우 보편화돼 있다. 가령 요즘 가동률이 좋다고 북한 언론이 자랑하는 수출피복공장의 경우도 옷 한 벌의 적정 가공비가 10달러라면 중국 회사와 한 계약서엔 7∼8달러만 적고 나머지 3∼4달러는 몰래 직접 받는다. 이 경우 가공비가 일반적인 가격보다 할인되기 때문에 상대방 회사도 흔쾌히 이면계약에 응한다. 중국 사업가들에게도 이런 방식은 매우 익숙한 일일 터이다.
지난해 북한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기록한 무역 규모는 65억4500만 달러로, 수출과 수입은 각각 29억1200만 달러와 36억3300만 달러였다. 하지만 상세 품목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식이 발견된다. 지구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북한이지만 수출할 때는 국제시세보다 터무니없이 싸게 팔고, 수입할 때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비싸게 사는 식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장부상에만 그럴 뿐이다. 실제론 진짜 시세와의 차액만큼인 수십억 달러가 증발해 평양의 고급 아파트와 사치품, 호화 서비스로 변신한다. 무역을 담당한 무역성과 각종 지도국, 총국 등에는 고위간부 자녀나 친인척들이 넘쳐난다. 해외에 나와 있는 각 기관 무역대표들도 수입 건을 한 건 따기 위해 평양 간부들에게 아첨하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가격이 투명하지 않은 군수산업 관련 수출입 종사자들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를 수 있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 최대 수출품목은 무연탄으로 13억7371만 달러어치였으며 최대 수입 품목은 석유로 5억9813만 달러어치였다. 대중 교역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무연탄과 석유 수출입을 장성택과 심복들이 작년까지 독점했다. 장성택보다 며칠 앞서 총살당한 장수길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은 석유 이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장의 측근이 틀어쥔 것은 비단 무연탄과 석유만이 아니었으니 이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해먹었는지는 상상만 할 뿐이다. 이 비리의 노다지판에 끼어들려면 장성택 눈에 들어 심복이 되는 길밖에 없었으리라.
이러니 장의 측근이 다른 간부들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자명했던 일. 국가 자원을 독점하고 떵떵거리던 장의 측근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자 주민들 사이에선 속 시원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물론 그 자리를 조직지도부와 보위부 연줄의 다른 ‘대도(大盜)’들이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 처형 이후 지금까지도 4000여 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를 갔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의 거부(巨富)였을 것이다. 두 기자가 1년 전 외교단회관 수영장에서 보았다는 롤렉스시계를 자랑하던 중년 남성도 혹시 지금쯤 어느 수용소에 끌려가 채찍을 맞으며 무연탄을 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