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905년 日軍능력 과대평가… 필리핀과 조선 희생양 만들어 지금은 中군사력에 지레 겁먹고 日역할 강화시키는 惡手 시도 우방국과 균형 잃은 日재무장… 아시아 분쟁의 불씨 되고 美에도 언젠가 부메랑 될 것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1905년과 현재의 상황 사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일본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과 한국은 흥정 주체라기보다는 흥정 대상에 가까워 우리 뜻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8위 군사대국이므로 구한말과 다르다는 견해가 있지만 세계 1, 2, 3, 4위에 둘러싸인 세계 8위의 허망하고 덧없음은 유럽의 투쟁역사가 보여준 냉혹한 현실이다.
중국을 견제하려고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키우고, 서아시아에서 인도와 협력하는 것이 미국 아시아복귀 전략의 기본구도인데 한국의 위상이 명확하지 않다. 아시아복귀 전략과 일본의 이익에 부합되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군 상륙은 한국의 승인을 전제로 한다고 하나 약자인 한국이 승인권을 제대로 행사하긴 어렵다. 일본이 미국의 묵인하에 납치문제 협상을 통해 북-일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은 집단적자위권 행사 범위를 한반도 전체로 하기 위한 정지작업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해병대를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태평양에서의 합동해상훈련 비중을 크게 잡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다. 워싱턴포스트 1면에 육군헬기가 해군함정에 착륙하는 사진이 실렸는데 미군전략의 변화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한반도 유사시 육군의 추가 투입을 일본군에 맡기고 미군은 해군 함대에서 원거리정밀타격에 치중한다고 가정하면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중국, 러시아에 다가갈 수도 없고 일본의 전초기지 역할에 머무르기도 그렇다. 구한말 열강 사이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던 조선 사대부의 고뇌가 이런 것이었을까? 못난 임금, 못난 양반을 탓하며 뼈아픈 역사를 분노와 모욕감에 떨며 읽던 기억에서 분노를 내려놓고자 한다. 후손들이 분노와 모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방책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주국방이 살길인데 우리 손으로 첨단무기를 만들지 못하고 복지 타령으로 첨단무기 구입예산을 늘리기도 어려운 딱한 상황이다. 우리 군은 첨단전력 증강에 나서는 동시에 아시아복귀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 일본과 대등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짚을 것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옳은 선택이었느냐는 점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이겼지만 외채로 구입한 영국제 군함과 무기에 의존했고 외채도 미국, 영국에서 조달해서 미국과 싸울 형편이 아니었다. 필리핀을 얻기 위해 굳이 조선을 제물로 삼을 필요가 없었는데 일본을 과대평가했다.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이 되는 것도 옳은 선택이 아니다. 아시아 방위비용을 우방국들이 분담하는 것이 먼저이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불가피하면 주변 우방국들의 무력도 같이 키워야 한다. 특히 한국군의 증강을 통해 일본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중요하다. 아시아 우방국과의 균형을 일탈한 일본의 재무장은 분쟁 요인이 되고 미국에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기업제도에 입각한 놀라운 기술진보능력이 있어 천지개벽이 없는 한 군사 최강국의 위상을 잃을 가능성이 없다. 중국의 우주선은 의미 있는 성과지만 미국이 반세기 전에 이뤘듯이 미중 간 군사기술 격차는 유지될 것이므로 굳이 일본만 강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제임스 브래들리는 1905년의 미일 외교 막후를 파헤친 ‘제국의 항해(The Imperial Cruise)’에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의 씨앗을 뿌린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군사대국 일본이 어떤 문제를 만들지 잘 헤아려야 한다. 일본이 끝까지 미국 편에 선다는 보장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