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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최영해]섹스, 거짓말 그리고 검사

입력 | 2014-08-21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지난해 이맘때 채동욱 검찰총장은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대하여 굳건히 대처하면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본연의 직무수행을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은닉 의혹을 처음 보도했을 때 검찰 내부통신망에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며 올린 글이다.

해명이 너무 거창해 의아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점차 드러나면서 채동욱의 해명은 조롱거리가 됐다. 그에게 공복(公僕)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두말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시에 “아픈 가족사를 들추고 싶지 않다. 불쌍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더이상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사표를 던졌더라면 동정 여론도 있었을 것이다. 퇴임식에까지 부인과 딸을 대동해 결백을 주장했던 채동욱은 결국 부하 검사의 손에 의해 거짓말쟁이로 판명 났다. 사랑하는 가족을 속이고, 급기야 천륜(天倫)을 거스른 비정한 아버지가 돼 버렸다. 검찰수사 발표 후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것이 도리였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건설업자의 별장 성(性)접대 로비사건에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언론 보도 후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되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막중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며 사표를 냈다. 사실이 아니라면 끝까지 남아 직을 걸고서라도 진실을 밝힐 일 아닌가.

김 씨는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검찰은 수사 8개월 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언론의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은 그치지 않았다. 진정 결백하다면 김 씨 쪽에서 성접대를 강요당했다는 여성과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되레 성접대 여성이 재수사해 달라고 고소한 판국이다.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길거리 음란행위 의혹에 휘말려 사표를 내면서 한 말도 “사실이 아니다”였다. 채동욱 김학의 김수창 씨 세 사람이 하나같이 엇비슷한 해명 레퍼토리다. 나는 호주머니에 베이비로션을 갖고 있던 김 전 지검장이 앞서 두 사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찰의 수사 지휘를 하는 검사장이 바바리맨 같은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당하는 것은 검찰 조직뿐만 아니라 가문에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금방 진실이 드러날 일을 놓고 이리저리 둘러대는 것도 참 보기 딱하다. 경찰 수사가 사실이라면 성윤리의 문제를 넘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안이다.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이 시정잡배 뺨치는 고위공직자의 거짓말이다. 성추문도 추악하지만 위선과 거짓말은 용서하기 어렵다. 지방에 내려가면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 일부 고위직 검사의 잇따른 성추문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뿌리 깊은 권력 의식과 자만감이 불러온 참사다.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방불케 하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검사’가 막장 시리즈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만신창이 검찰로 어떻게 사회 기강을 다잡고 범죄를 다스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유병언 부실 수사와 관련해 인천지검장이 물러나는 것으로 꼬리 자르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검찰 수뇌부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벼랑 끝에 선 검찰을 도덕성으로 무장한 법조인으로 새 판을 짜지 않으면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