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미가 예전만 못할까. 후배 A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팀들이 비슷비슷해요. 팀마다 자신만의 색깔이 없으니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후배 B의 이야기. “야구를 보면서 감동을 느낀 지 오래됐어요. 감동은 한계를 극복할 때 나오는 거잖아요. 선동열과 박충식의 15회 완투 맞대결 같은 거요. 요즘은 투수건 타자건 다 생각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 같아요.”
선배 C의 생각. “야구는 흐름의 경기다. 그런데 요즘 야구는 흐름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경기 종반 흐름을 뒤집는 점수가 나오면 경기가 끝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타고투저인 요즘은 그때부터 치고받기 시작한다. 승부처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
돌이켜 보면 한국 야구의 수준이 가장 높았던 때이기도 하다. SK 선수들은 공격 때는 한 베이스를 더 가고, 수비 때는 한 베이스를 덜 주는 빡빡한 야구를 했다. 수비 조직력은 다른 팀 처지에서 보면 숨이 막힐 정도였다. 김성근 감독의 지옥 훈련을 거친 선수들은 패배 자체를 억울하게 생각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끈 두산은 통 큰 야구로 SK를 이겨보려 했다. 번트와 같은 세밀한 작전 대신 강공을 선호했고, 부족한 부분은 발 빠른 주자들을 활용한 발야구로 메웠다. 두산의 빠른 야구는 김성근 감독마저 자극했을 정도였다. 선의의 경쟁을 벌인 두 팀은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다. 두 팀의 대결은 곧 끊어질 것만 같은 팽팽한 줄을 당길 때처럼 긴장감이 넘쳤다. 엄청난 집중력의 결과물인 파인 플레이는 팬들을 매료시켰다.
메이저리그 출신 로이스터 감독의 ‘자율 야구’도 신선했다. 로이스터 감독의 미국식 선수 운영은 김성근 감독의 ‘관리 야구’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두 감독의 신경전도 심심찮게 벌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 승리, 그리고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선택한 길은 달랐지만 열정만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뜨거웠다.
올해 SK와 두산, 롯데는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마땅히 재미있어야 할 4위 싸움이지만 어딘가 맥이 빠져 있다.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팀이 좀 덜 못하느냐의 경쟁 같아서다.
외형상 한국 프로야구는 순항하고 있다. 월드컵이 열린 해이지만 500만 관중을 돌파했고 정규시즌이 끝날 때쯤에는 600만 관중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색깔 없이 밋밋한 야구가 대세라면 위기가 당장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지더라도 재미있는 야구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