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미래’ 뉴욕 세미나]한미안보연구회 주최, 화정평화재단 후원

20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제29차 한미안보 학술회의에서는 남북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했다. 그러나 방법론에서는 한미 전문가 사이에 온도차가 났다. 북한과 맞닿아 살고 있는 한국은 신중하고 조심스럽지만 떨어져 있는 미국은 좀 더 과감하고 공격적이었다. 뉴욕=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체제와 이념이 다르고, 정전(停戰) 상태에 있는 남북한이 어떻게 ‘평화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중앙도서관에서는 20, 21일(현지 시간) 이틀간 이 ‘어떻게’의 문제를 두고 심도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단법인 한미안보연구회가 주최하고 화정평화재단이 후원한 ‘제29차 한미안보 학술회의’는 ‘한반도의 미래’, 즉 통일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약 200명이 참석한 이번 학술회의는 4개 소주제별 논의가 끝날 때마다 ‘플로어(객석) 질문’을 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 “대북 억지력 강화해야 통일 길 열린다”
이정훈 외교부 정부인권대사(연세대 교수)는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핵 위협, 내부적으로는 인권 유린이라는 ‘두 얼굴의 괴물’로 운영되는 나라”라며 “통일이 한국 헌법, 즉 자유민주적 질서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마상윤 가톨릭대 교수는 21일 회의에서 “통일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나눠진 두 실체의 통합을 위한 긴 과정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법률적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통합사회를 새로 건설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특히 “북한 주민들이 ‘남한 주도의 통일’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통일 이후의 통합’ 문제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성호 서울대 교수도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나 체제 붕괴 가능성에 (내부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자칫 북한이나 주변 국가에 ‘한국이 흡수통일을 기도한다’는 메시지로 잘못 읽히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미-중-일-러 4강의 복잡한 통일 방정식
한국 패널에 비해 미국 패널들은 ‘통일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많이 주문했다.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존스홉킨스대 겸임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제2차 냉전’ 구도를 만들면서 냉전 시대의 동지와 적을 구분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이 새로운 ‘두 개의 한국’ 정책이 한반도 통일 노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이 캠파우즌 컬럼비아대 겸임교수는 “한반도 통일에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중국은 자신들 국익을 챙기는 데도 손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세미나 참석한 화제의 패널 3人 ▼
탈북자 출신 김광진 안보전략硏 위원 “김정은 핵무기 위협땐 동북아 核 도미노”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김 연구위원이 “지난해 처형당한 장성택(김정은의 고모부)이 (북한에 있을 때) 내 상사였다”고 말하자 ‘아∼’ 하는 탄성도 터졌다. 그는 “김정은 체제는 아파트 붕괴 사고도 공개하고 젊은 부인도 동행하는 등 김정일 체제 때보다 투명해졌지만 반대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김정일은 핵을 때로는 무기로, 때로는 협상수단으로 활용해 왔지만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내세우면서 협상카드로 쓸 여지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핵을 무기로 활용할 때는 동북아지역의 핵 도미노 현상이 ‘지진해일(쓰나미)’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핵 도미노 쓰나미는 결국 김정은 체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CIA 국장 지낸 퍼트레이어스 장군 “美, 한국이 도움 요청땐 주저없이 나설 것”
무료 공개 세미나였던 이날 행사에서 미국 중부군사령관 등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예비역 대장(장군·사진)의 기조연설 때는 이런 엄격한 당부가 있었다.
퍼트레이어스 장군은 37년 동안 군에 복무하면서 6개 사령관을 지냈으며 그중 5개는 전투사령관이었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지냈다. ‘상당히 민감한 얘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참석자들의 기대와 달리 그는 20여 분의 연설시간 대부분을 한국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데 할애했다.
퍼트레이어스 장군은 “한국이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있을 때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며 “미국은 한국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아무런 주저 없이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는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미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한국을 따라가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퍼트레이어스 장군은 기조연설을 마치면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박용옥 前 국방부 차관 “한반도 비핵화 물거품… 새 접근법 필요”
그는 북한의 도발이나 범죄행위는 북한 스스로 ①도발해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②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이나 제재가 위협적이지 않으며 ③한국이 독자적인 보복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을 때 주로 벌어진다고 진단했다. 김정은 체제는 한편으로는 대화를 시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도발을 하는 양면 전술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 전 차관은 “수십 년간 한반도를 안정시키고 비핵화하려는 모든 노력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만큼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독자적 군사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미 미사일 협정을 재개정해 한국의 탄도미사일 개발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해야 하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도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등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화통일의 방법론’을 묻는 청중의 질문에 “무엇보다 미국 중국, 주요 2개국(G2)이 ‘한반도 통일이 자신들의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