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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숨겨진 역사-비경 알고가면 재미 2배

입력 | 2014-08-22 03:00:00

남산도 쏙… 연주봉 옹성 전망 최고




남한산성의 5개 옹성 중 전망이 가장 좋은 연주봉 옹성은 서문 옆에 위치하며 한강 수계와 멀리 남산까지 바라다보인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 광주시에 있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역사와 잘 보전된 성곽, 복원된 행궁과 유적, 성곽 등산로, 관통도로 등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수도권 명소다. 올해 6월 국내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방문객이 더욱 늘고 있다. 지난달은 여름철로 비교적 방문객이 적은 비수기임에도 예년 5000명에 비해 배가 넘는 1만1000여 명이 찾아 한층 높아진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잘 알려진 유적뿐 아니라 구석구석 숨겨진 비경과 장소를 살펴보면 남한산성 방문이 더욱 흥미로울 듯하다.

○ 최초 축성은 병자호란보다 1000년 앞서

남한산성의 최초 축성 시기는 2007년 행궁복원공사에서 주장성 건물지가 발견되면서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부분에 ‘한산주에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步)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바로 주장성이 남한산성이다.

신라가 삼국 통일한 뒤 당과 갈등을 빚으면서 당의 침입에 대비해 북쪽 변방을 지키려고 쌓았던 것이다. 행궁 정문을 통과해 오른쪽에 있는 주장성 건물지는 길이가 50m나 되고 벽체 두께가 2m나 되는 세계 최대 단일 규모 건물로 확인됐다. 특히 여기서 발굴된 기와 하나의 무게가 20kg이나 돼 국내에서 발견된 기와 중 가장 크고 무겁다. 조선시대 기와는 보통 3kg을 넘지 않는다.

○ 최고의 전망 연주봉 옹성

남한산성은 성곽둘레길을 비롯해 곳곳에서 서울 송파지역과 성남, 하남시 등이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서문 옆의 연주봉 옹성(甕城)이 꼽힌다.

옹성은 통상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성벽을 둘러싼 이중 성벽을 말하는데, 남한산성 옹성은 적을 3면에서 공격하기 위해 설치됐기 때문에 바깥쪽으로 돌출돼 있다.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서문 옆에 있는 이 옹성은 둘레가 315m로 비밀통로인 암문(暗門)을 통과하면 들어갈 수 있다. 팔당과 한강 수계, 남산, 아차산, 하남시, 서울 송파지역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장경사신지옹성도 둘러볼 수 있는데, 나머지 제1, 2, 3 남옹성은 보수 중이라 차단돼 있다.

임금이 임시 거처하는 행궁이지만 중요성을 감안해 한양의 종묘와 마찬가지로 행궁 좌측에 별도로 좌전이 설치됐다.

○ 고즈넉한 옛 성

남한산성 성곽은 본성(9km)과 외성(2.17km)으로 나뉜다. 방문객들은 본성만 보고 마는데 외성도 찾아볼 만하다.

봉암성과 한봉성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화포를 쏘며 공격한 뒤 중요성을 인식해 약점을 보강하고자 숙종 때 축성했다. 본성이 말끔히 정비된 데 비해 이곳은 훼손된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본성보다 옛 성곽에 와 있다는 고즈넉한 느낌을 안겨준다.

행궁 내행전 뒤에 있는 반석(磐石)은 큰 돌에 새겨진 금석문으로 남한산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제공

○ 행궁의 좌전과 우실, 그리고 반석

임금이 한양을 나와 머무르는 행궁은 여러 곳에 있었다. 하지만 남한산성 행궁에는 북한산성이나 수원 화성 등 다른 행궁에는 없는 특징이 있다.

바로 한양으로 치면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과 사직단에 해당하는 우실이 있다. 그만큼 남한산성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좌전은 복원됐고 우실은 정비될 예정이다. 특히 행궁 내행전 뒤의 재덕당 옆에는 반석(磐石)이라고 새겨진 큰 돌이 있다.

행궁 건립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내력이 알져지진 않았다. 다만 한양이 적의 침입을 받더라도 남한산성이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근거지이자 초석이라는 의미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