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달력
레닌도 시간표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을 간파한 혁명가였다. 혁명세력의 수장이 된 후 그가 우선 착수한 사업은 꼼꼼한 시간표 작성이었다. 엄격하게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민중봉기의 과업을 수행했으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과감히 숙청했다.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처럼 그도 역시 새로운 시간의 창시자이자 새로운 시계 제조인이었다. 앙리 레비의 말마따나 지배자는 시간을 사유재산화하는 사람들이다. 스파르타쿠스에서 중국의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반항으로 반항을 시작하지 않은 혁명은 하나도 없지만, 그러나 시간표의 정치학은 특히 근대 이후의 특징인 듯하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 감옥은 물론이고 병영, 학교, 작업장 등 많은 사람들을 일목요연하게 통제해야 하는 장소에서 소수의 요원이 다수의 인원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시각적 배치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푸코가 판옵티콘이라고 이름 붙인 공간 분할의 다이어그램이다. 그러나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을 세밀하게 나누는 시간표 작성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기상시간, 취침시간, 작업시간, 공부시간 등의 주요 시간대는 물론이고 침대에서 내려와 침구 정돈하는 시간, 식사 전 손 씻는 시간까지를 엄격히 정하여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는 규율체제가 들어섰다. 합리적인 시간의 배분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물론 있었지만, 푸코는 그 뒤에 규율적 통제라는 강력한 권력의 행사가 있음을 간파한다. 세밀한 시간표를 통해 타인들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고, 힘을 행사한다는 것은 곧 권력이므로, 시간표는 결국 권력을 실어 나르는 운반수단이기 때문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