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의 천사들: 발레의 역사/제니퍼 호먼스 지음·정은지 옮김/736쪽·3만5000원·까치
발레의 대가 게오르게 발란친이 안무한 발레 ‘보석’ 작품 중 2막의 한 장면. 2막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맞춰 보석 ‘루비’를 표현한다. 까치 제공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명장면’은 있다. 낭만 발레의 정수로 꼽히는 ‘지젤’은 개인적으로 발레에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다. 2막에 등장하는 처녀귀신 ‘윌리’들의 군무는 예술 장르를 불문하고 최고의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순백의 로맨틱 튀튀(발레복)를 입은 윌리들이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어둠 속 시시각각 대열을 바꿔 추는 군무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이 군무는 실제로 ‘라 바야데르’ 3막(망령들의 왕국), ‘백조의 호수’ 2막과 4막의 호숫가 군무와 함께 발레 블랑(ballet blanc·하얀 발레)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젤의 군무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프랑스 궁정에서 예법으로 시작돼 러시아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는 발레 역사 400년을 저자는 10년간 꼼꼼히 추적해 기록했다. 나라별 발레의 발전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별 창작 과정과 뒷얘기까지 담고 있어 재미와 정보가 쏠쏠하다.
‘지젤’이 만들어진 과정 및 세계 최초의 지젤인 발레리나 카를로타 그리시와 지젤의 안무가 쥘 페로의 사랑 이야기는 흥미롭다. 책에는 지젤 외에도 초창기 ‘궁정 발레’ ‘라 실피드’ ‘스파르타쿠스’ ‘사랑의 전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봄의 제전’ 등 대표적인 발레 작품의 역사가 담겨 있다. 좋아하는 발레 작품이 있다면,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의 지역 발레단에서 발레리나로 활동하다가 무용평론가로 변신한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한 이유에 대해 “발레 레퍼토리는 책이나 자료에 기록되는 대신 무용수들의 육체에 간직된 기억의 예술이라 세대가 경과될 때마다 과거의 한 조각을 상실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만큼 발레에 대한 기록서가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브리태니커 사전’에 맞먹을 법한 방대한 분량과 이론서 같은 문장이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만큼 풍성한 자료와 내용을 담고 있다. 2010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논픽션 부문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