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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시간여행’ 과학적으로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

입력 | 2014-08-25 03:00:00

“이론상 가능해도 검증못할 몽상”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터키’ ‘엣지 오브 투모로우’(위 사진부터). 영화에선 시간여행이 단골 소재지만 과학적으론 실제 가능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동아일보DB

최근 개봉한 영화 ‘터키’는 미국 추수감사절 비운(?)의 동물인 칠면조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추수감사절마다 식탁에 오르는 전통을 깨려 칠면조들이 미국 정부가 개발한 타임머신을 타고 개척시대로 돌아간다는 내용. 여기서 달걀처럼 매끈하게 생긴 타임머신은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시간여행은 이젠 영화나 소설에서 너무 익숙해 식상함을 줄 정도다. 최근 극장가에 걸렸던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같은 소재를 다뤘다. 국내 역시 지난해 tvN 드라마 ‘나인’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 시간여행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은 언젠가 실현 가능한 얘길까. ‘과학동아’를 펴내는 동아사이언스 팀과 과학 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의 도움말로 시간여행을 분석해봤다.

우선 용어 정리부터. 요즘 시간여행과 관련해 ‘타임 슬립(Slip)’이란 표현이 유행이다. 타임머신이 인간이 발명한 기계를 이용하는 거라면, 타임 슬립은 초능력이건 뭐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미끄러지듯 시공간을 이동한단 뜻이다. 타임 슬립은 과학에서 출발한 개념은 아니다. 1994년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가 소설 ‘5분 후의 세계’에서 쓰며 대중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여행에는 얼마만 한 힘이 필요할까. 다양한 과학적 가설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 것으로 본다. 음의 중력이니 팬텀에너지니 너무 복잡한 개념은 접어두자. 태양에너지보다 훨씬 큰, 뭐를 상상하건 그보단 큰 힘이 필요하다.

이런 힘이 마련돼도 시간여행은 미래로만 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그동안 과학계에선 우세했다. 짐 알칼릴리 영국 서리대 물리학과 교수는 저서 ‘블랙홀 교실’에서 “상대적으로 절대불변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속도’를 지닌 비행선이 있다면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68년 영화 ‘혹성탈출’에서 우주로 떠났던 인간 주인공이 유인원이 지배하는 미래의 지구로 돌아온 것도 이에 근거한 설정이다.

상당수 과학자와 철학자는 ‘조부모 역설’을 근거로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조부모 역설이란 과거로 가면 자신의 조부모도 죽일 수 있단 가정. 끔찍한 상상이지만 이렇게 되면 본인이 태어날 수 없으니, 살인을 저지를 행위의 주체가 없다. 1985년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처녀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주인공에게 관심을 갖자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빠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최근엔 이 역설 또한 극복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미 자신이 태어나는 결과가 ‘정해졌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조부모를 죽이는 데 실패한단 주장이다. 한마디로 터미네이터가 아무리 용을 써도 존 코너의 탄생은 막을 수 없단 얘기다. 또 ‘다중우주론’을 바탕으로 역설을 부정하기도 한다. 다차원 속에 수많은 평행 우주가 함께 존재해 한 우주에서 조부모가 죽더라도 다른 우주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본다.

한 가지 더. 타임머신을 발명해도 영화 ‘명량’의 조선 수군에게 최신예 전투함을 보낼 순 없다. 복잡한 과학적 설명을 제외하고 결론만 얘기하면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 장치를 발명하기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이언스북스의 노의성 편집장은 “현대 물리학에선 이론적으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다만 과학적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본적 인과율에 어긋나는 문화적 설정은 몽상에 가깝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